이사 가던 날

by 김호섭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나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Song by 김연숙




일찍이 수많은 선각자들은 물론, 박노해 시인께서도 "비워라. 더는 비울 게 없을 때까지. 그러면 신비로운 충만이 시작된다." 하셨고, 김호연 소설가께서는 휴식과 작업공간의 분리를 <소설가의 작업실>에서 강조하셨다. 궁색한 살림살이지만 비울걸 더 비우고 작업공간을 확보하자.

명분이 명쾌하다.


이사 가자.



결심과 결단을 잘 못하는 우유가 부단한 성격이 나의 백만 번째 단점이라면, 한번 결심하면 옹달샘에서 샘솟는 미친듯한 추진력과 가열찬 실행력은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 할 만하다.


이사 간다.



1박 2일에 걸쳐 이사를 한다. 비가 너무 와서 일부 짐만 옮기고, 다음날인 오늘, 나머지 짐을 옮긴다. 짐이라고 해봐야 삼분에 이가 책이고 삼분에 일은 침대와 수저다. 너무 버렸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버리고 비우면 충만된다고 시인께서 말씀하셨으니 채워지는 게 없으면 나중에 시인께 따져 물으면 될 일이다. 문해력이 부족하시군요라고 답하시면

서로 웃으면 된다.


이사했다.



나름 번듯한 오피스텔에서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가는 이사지만 공간은 두 배이며 월세는 절반이다. 안방과 주방 분리. 그 사이에 작업실로 활용할 공간도 있다. 제일 마음에 든다. 휴식과 작업의 분리가 가능하겠다. 삐걱거리긴 하지만 조그만 다락방도 있다. 무너지진 않겠다. 공간에 욕심을 낸 건 아닌데 대충 봐도 스무 평 가까이 될듯싶다. 네 평 여관방에서 별을 바라보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창문을 여니 오후의 햇살이 와장창 쏟아진다. 눈이 부시게.

월미도 끝자락과 항구의 바다, 드넓은 하늘. 육해공이 앞다투며 펼쳐진다. 맘이 벅차게.

번잡한 다운타운에서 벗어나 다시 공원 근처로 둥지를 틀었다. 걸어서 2분 17초. 완벽한 공세권이다.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우려 하는가.

이사 잘했냐? 네. 어머니. 그래 헌 집 나와서 새집 오니 어떠냐? 네... 네?!


그래. 오래된 주택이지만 여기가 새집이다. 새로움을 채우라고 물음표로서 느낌표를 말하신다. 역시 세월의 향기는 흉내 낼 수 없으며 연륜의 호수는 깊이를 알 수 없다.

우리 어머니.


이사 가던 날.

앞집아이 숙이도 없고 탱자나무 흩날리는 꽃잎도 없다.

그저 딱 한 계절 겨울. 육 개월.

짧았지만, 내내 아팠던 스완 오피스텔아 잘 있어라.

네 잘못이 아니다. 정을 못 준 내 잘못이다.

핵폭탄 전기세 고지서야 너도 이젠 안녕.


오래되고 조용한 동네로

나를 고립시킨다.

다시 시작이다.

쓰는 자로서.

새로움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