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아르 영화계에 4대 천왕이 있다면 한국 날씨계에는 4대 폭왕이 있다. 폭염, 폭우, 폭설 그리고 폭풍(태풍).
사나울 폭 또는 난폭할 폭이다. 세월이 갈수록 점잖지 못하고
오히려 사나워지고 난폭해지니, 꼬일데로 배배꼬여 오고가는 사람마다 싸우자고 주먹쥐는 어느 영감탱이를 닮아간다. (난폭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이려니 싶다)
어쨌거나, 이런 난폭한 날씨에 산책하기 좋아한다. 그 이유 는 두 가지다. 우선, 세상 한적하다. 마치 설날이나 추석정도 되는 민족의 대명절날 갑자기 썰렁해진 도심에 홀로 남겨진
고즈넉처럼, 2호선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와르르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의 어휴 숨틔는 여유처럼 그런 상황들이
누군가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도 받은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선물은 반갑지 아니한가.
맑고 선선한 날이면 동네 공원에는 인천시민은 물론 온 세계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특별히 엔터테인할 것도 근사한 볼거리도 딱히 없어 어디에다 내세우기 민망한 작은 공원인데, 역사가 있고 항구가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이 오간다. (오로지 나를 보러 오는 사람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 구경도 재밌고 즐겁긴 한데 일 년 열두 달은 힘들다.
그러니 4대 폭왕이 선사하는 어느 날의 한적을 소년은 짜증 대신 반가움으로 맞이한다.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좀 특이한 인간이긴 하다. (그러니 쓰는 자가 되었나?) 화염 같은 더위, 모든 걸 날려버릴 바람, 시선을 덮어버릴 눈, 그리고 눈물 같은 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하늘에서 뭔가 오는데 종류만 다를 뿐이다.
세상 쿨하지 아니한가.
또 한 가지 이유는 듣기 위해서다. 평소에 말없이 침묵하던 자연이 나무가 새가 이름 모를 동식물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한꺼번에 수다를 쏟아낸다. 나는 이래서 아프고 너는 저래서
힘들다. 누구는 요래서 괴로울 것이다.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 자연의 목소리를 듣게되는 때가 바로 4대 폭왕이 임하시는 시간이다. 1년 열두달, 거의 대부분의 날들에 이 폭망한 인간의 하소연을 귀가 닳도록 들어주고 토닥이느라 지쳐버린 그들인데 며칠간은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그렇게 서로 오가는 우정속에 광장 어르신 향나무에 사랑이라도 걸리면 경사롭지 아니한가.
폭풍(태풍 카눈)이 지나갔다. 오늘도 역시나 근사한 산책을 마치며 귀가하다가, 혹시 따라 하실 분이 계실지 몰라 한가지 유의 사항을 적어본다. 이어폰과 에어팟은 가급적 빼거나 꺼놓으시면 좋겠다. 가끔 들려오는 우지끈 뚝딱 소리를 듣고 살짜쿵 피해야 하니까. 소리를 못 들으면 떨어지는 우람한 나뭇가지가 머리에 심어져 머리에서 빨간 꽃이 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정도만 조심하면 꽤나 근사하고 즐거운 산책이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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