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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Jan 13. 2022

나만 그런 건가? vs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초보 작가의 귀여운 고뇌


처음엔 그랬다.  

작년 9월, 얼떨결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스스로 한 다짐은 최소한 일주일에 꼭지 글 최소 한 개씩은 올리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작가가 되자.라는 야무진 계획이 있었다.

두 가지 마음이 부닥쳤다.

직장을 다니며 별도로 글을 쓴다는 일이 가능키나 하겠냐라는 초심자의 연약한 마음과,  

언제까지 이러구 세월만 보내며 살 것이냐 (이 인간아). 제발 하고 싶은 일.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도전자의 기특한 마음이 그것이었다.

두 마음의 적절한 타협에서 나온 협상안은 주 1회 글을 올리자는 것이었고,

그 정도면 본캐와 부캐 역할에 있어서 황금분할적인 로드 발란싱이라고 나름 자신했었다.

급기야, 최초의 독자인 아들과 딸에게 호기 양양하게 주 1회라는 나름의 발행주기를 선포하였으며 애정 어린 구독과 날카로운 하트를 주문하였다.

명명하여 '주간 김호섭'이라는 취지 하에 초보 브런치 작가가 야심 차게 세상에 출몰한 것이다.


어느새 해가 바뀌어 2년 차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황송하지만 연말에는 브런치 작가카드도 받았다.

무슨 시험이나 테스트를 거쳐야 등급이 올라가는 그런 게 아니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글 몇 개 올리고 한 해가 지나면 브런치 작가카드에 내 이름이 2년 차 작가로 영롱히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시다시피 처음 3 ~ 4주는 그럭저럭 주간 발행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월간, 아니 격월간의 주기도 감당키 버거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핑계는 수백 가지 댈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참으로 다채롭다.

회사일이 바빠서, 건강이 안 좋아서, 모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날씨가 추워서, 대선을 앞둔 정국이 시끄러워서,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흐려서, 비 와서 눈 와서, 미세먼지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받아서, 꿈자리가 안 좋아서, 아래층의 강아지가 너무 짖어대서. (참고로, 이 녀석은 나를 두 번이나 물었다. 그것도 아주 아프게)

이 핑계 저 핑계 다양한 핑계들이 "쓰는 Action"을 참으로 더디고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다.

나만 그런 건가?


사실 이러한 핑계들은 표면적인 이유인 것이고, 보다 본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겠다 싶다.


첫 번째는 두려움이다.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거나, 유명 작가님들의 책을 들여다볼라치면

너무도 멋지고 감동적이며 내공 깊은 글들을 접하고 나니 내가 과연 이런 분들처럼 글을 쓸 수나 있는 것인가. 밀려오는 것은 두려움이다.

애초에 이 분야에 재능이 있는 분들이나 쓰는 일에 적합하지 나 같은 동네 아저씨가?  그 두려움은 주눅 또는 위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나만 그런 건가?


두 번째는 막막함이다.

차라리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 생각 없을 때가 오히려 이런저런 글감과 이야깃거리,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말이 되거나 말거나 쓸 거리가 제법 있었다 생각했는 책 10권이 아니고 고작 10 여개의 꼭지 글을 올리고 나서는 벌써 다음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헛헛하도록 막막해지는 그런 유형의 마음이다.

너무 훌륭한 작가님들의 글과 책을 봐서 그런가? 한없이 사사롭고 재미도 없고 참으로 무미건조한 나의 일상 이야기들이 에세이의 글감으로 과연 마땅한 것인가?

쓸 주제나 소재에 대한 막막함이 또 하나의 장벽이 된 것이다. 짧은 꼭지 하나 쓰고 발행 버튼 누르기가  이렇게 막막한데 책 쓰기는 무슨. 이런. 젠장. 언감생심이란 말인가...

쓰다 보면 감이 잡힌다는데 정말 그런가? 그런 찬란한 시절이 나에게도 정녕 올 것인가 말이다.  

나만 그런 건가?


세 번째는 게으름과 산만함이다.

일단 책상머리에 차분히 앉기가 어렵다. 뭐라도 써보려고, 스스로의 멱살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책상에 앉았다 더라도 한참을 멍 때리다가 괜스레 부산스러워진다. 안 하던 책상 정리도 하고 , 쌓여있는 설거지에 방청소까지 점점 일이 커지고 그 일에 정신 팔리고 정작 글쓰기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아마추어 복서처럼 괜한 주변만 열심히 때리다가 지쳐 링 바닥에 아니. 다시 침대로  쓰러지는 이런 어처구니라니.

나만 그런 건가?


두려움과 막막함에 게으름/산만함 투 샷 제대로 추가하여 아메리카노도 라테도 다방커피도 아닌 이상한 맛의 세월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급기야, 글쓰기를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긴 한가? 독서야 워낙 문자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렇다 쳐도 글쓰기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인 것 같고, 하긴 유명 작가로부터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동네 글쓰기 모임 같은 활동도 해본 적 없는 초심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고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겠다.


그러다 문득.

이거 이거... 연애하는 마음과 비슷한데. 연인들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아보고 탐색하는 그 과정. 즉 밀당이나 썸 타는  마음과 어쩜 이리도 유사한 것인가. 뭔가 붕 떠있는 마음, 차분히 정좌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산한 마음들. 선명한 연애나 사랑의 Core를 구성하지 못한 매한 상태에서 따라오는 온갖 혼란스러움. 그래 이건 연애할 때 마음 구조와 메커니즘이 유사하다는 생각에 이르다 보니 바야흐로 내가 글쓰기랑 연애 또는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야.라는 나름의 위안성 분석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건 좀 억지스럽고 작위적이다.

아직 내가 이 업계? 에서 그런 정도의 고급적이고 고차원적인 레벨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초짜 주제에 무슨 벌써 사랑타령인가. 아래층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질문은 뱀처럼 꼬이고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높고 복잡한 미로가 되었고, 나는 그저 그 미로에 갇힌 한 마리 여린 양이된 것이었다.  범띠 새해를 맞이한 한 마리 여린 양은 책 속에 길이 있고 스승이 있다는  선친의 조언을 떠올려  몇몇 유명 작가의 글쓰기 관련 책을 읽게 된 건 사뭇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리라.


아니 이럴 수가...

그 유명하신 천재적 작가님들도 글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지금이나 나와 비슷한 고뇌에 몸부림치고 여전히 부산하고 매일이 막막하고 노트북 펼치길  두려워하신다는 충격적이고도 공통적인 고백이 잇따른다.

아니 이럴 수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그분들과의 쨍한 공감대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없는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심리상태는 늘 안온한 마음의 울타리를 쳐준다.

역시 우리는 동일 조상 단군의 자손이며  호모 사피엔스 DNA 적 징표 이리라. 이러한 심정과 상태는 글을 쓰려는 대다수가 겪고 있는 심리상태이겠고, 초기에 그 증상이 심해지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마저도 일상의 한 루틴 또는 패턴으로 인식된다는 고수들의 말씀은 그마저도 또 하나의 내공으로 느껴지게 된다.


강호에 여러 좋은 스승님들의 금과옥조와 일초식이 있었지만

최근 읽은 김신회 작가님의 [심심과 열심]이라는 책에서 본 글귀에  눈길이 간다. 

"쓰는 일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내 안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나에게서 나온 글을 믿어야 한다."


그래, 모든 새로운 시작과 배움에는 시간과 세월이 필요한 법. 내 안에서 나오는 정수.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별 볼 일 없어도 그것에 집중하고

나 스스로를 믿고 힘차게 밀고 나가보자. 그게 곧 나니까.

독서도 그렇고,

글쓰기 또한 누가 시킨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좋아라 하는 일이니 말이다.


다시금 절절한 연애를 하고 싶다.

글쓰기라는 여인과.

이번엔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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