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와 자기표현 (1)

by 김호섭


"자. 그럼, 돌아가면서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 가져봅시다." 강의가 끝나자, 선생님은 빙 둘러앉은 학생들에게 말씀하신다. 소년은 뭐라 말할지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김호섭이라고 합니다. 자유공원 근처에 살구요. 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는 조금씩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림 그려보고 싶어서 강의 들으러 왔습니다.' 딱 떨어진다. 군더더기란 찾을 수 없다. 심플이즈 베스트다. 준비가 되었으니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학생들은 대부분 40~60대 여성들, 80대 어르신 한 분, 20~30대 젊은이 서너 명. 합이 15명이다. 나이 든 아저씨는 네버에버 온리완. 나 혼자다. 어디를 가나 나 혼자다. 글쓰기 모임, 북토크, 도서관, 서점, 강연회…. 어딜 가나 낡은 아저씨는 나 혼자다.

이 땅의 아저씨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가.


사실, 이런 사고에는 허점이 많다.

낡은 아저씨들이 주로 출몰하는 장소는 따로 있다. 병원 응급실, 공원 장기판 벤치, 공사판, 이판사판…항구의 싸움판, 그리고 동네 포차.

소년이 이런 곳은 가급적 요리조리 피해 다니니, 낡은 아저씨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건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튼, 별스러운 생각 하면서 학생들의 자기소개를 듣는데 다들 엄청 진지하고 멋진 얘기들을 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초조해진다. 어라? 내 차례다. 큰일이다. 생각의 초고가 너무 빈약하고, 가뜩이나 선생님과 학생들이 나를 신기한 우주 생명체 보듯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안녕하세요. 새벽을 거닐고 문장을 노니는 문학소년 김호섭입니다. 음…. 어…. 그러니까…. 얼마 전에, 일본 소설가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첫 문장이 이랬습니다. [소에지마 하지메는 소실점을 등지고 서 있었다.]

이 문장에 캬~감동 먹고 상상해 보다가 이 장면을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 올라 그림 그리기 교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 희미한 소실점을 또렷이 보고 싶었고, 소실점 너머의 세상은 없는가. 있다면 어떤 우주일까 궁금해서 배우러 왔습니다."


말하면서 동시에 혼잣말도 한다. '아이구... 망했다. 여기는 그림 그리는 곳인데 웬 소설, 어쩔 문장, 저쩔 우주가 웬 말이냐.' 사람들이 세상 희한한 인간이 왔도다. 하면서 더욱 쏘아대는 시선이 레이저처럼 뜨겁다. '아니, 아니, 그렇게 관심 주시면 INFJ인 저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군요. 시선을 제발 좀 거두어 주소서.'

혼잣말과 밖엣말이 섞이고 어지러우니 정신은 자꾸만 안드로메다로 흐른다. 수습이 필요하다. 깔끔한 마무리로 만회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음.. 어.. 그러니까..."


수십 년 차 직장인 나부랭이도 자기소개는 늘 진땀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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