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계속)
"함께 수업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구요. 짧은 일정이겠지만, 모든 분들 원하시는 성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꾸벅 인사하면서 이건 또 너무 급 마무리 아닌가. 하여튼 망했다. 속 쓰린 독백이 위장에서 식도를 지나 전전두엽으로 올라오니 다시 어지럽다. 오늘 밤에 이불킥을 또 얼마나 하려나.
한숨 쉬면서 고개를 든다. 지금부터는 슬로우모션이다.
사람들이 물개처럼 박수를 친다. 활짝 웃는다.
(소년의 눈동자가 점..점…. 동그랗게 커진다)
희한하면서도 괜히 웃긴 아저씨가 왔구나 하는 표정들이다.
선생님도 웃으시면서 한 말씀하신다. "그래요. 문학도 미술도 모두 자기표현의 예술입니다. 도구만 다를 뿐, 뿌리는 같이 연결된 거죠. 그러니, 선을 그릴 때 피사체를 똑같이 그리는 거보다 [나]라는 필터를 통해서 나온 느낌으로 자유롭게 표현해 보세요. 대상을 잘 관찰하고 나와 일체화한다는 느낌으로 말이죠."
아... 자기표현의 세계! 소년은 무릎을 탁치진 않았지만, 이런 연결성에 사뭇 놀란다. 매일매일, 새벽에서 밤으로 가뜩이나 없는 머리카락 쥐어뜯어가며 쓰는 문장도 문자도 결국 점과 선의 연결. 선과 면의 만남. 내가 만난 세상과 소실점으로, 집으로 향해 가는 길.
한 편의 이야기로 표현되는 드라마. 이것이 개인의 인생 드라마 곧 삶이련가.
자기소개는 이어져 갔고, 한결 부드럽고 화기애애한 공기가 오후의 햇살과 함께 강의실에 스며든다.
끝 무렵의 어느 어여쁜 처자는 또 이런 말을 한다.
"물 위에 이름을 남기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아니, 여기 무슨 철학 수업 교실인가요? 소년의 눈이 반짝반짝 별처럼 빛난다.
자기소개 시간 이후엔 서로의 선과 그림을 보고 소통하는 시간. 같은 걸 보고 다르게 표현하는 고유성을 확인하고 소년의 눈은 반짝이다 못해 광채가 철철 흐른다. 여기 잘 왔다.
한 달 동안 네 번의 강습으로 끝나는 짧은 수업이지만, 살짝 예감해 본다. 어쩌면 볼 수 있겠다. 소실점.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실점이 인간의 소멸에 이르는 속절없는 의미라면 나는 이를 살짝 비틀어서 보련다. 나이가 더 들어서, 부들부들 손 떨리고 삐걱삐걱 걷게 되더라도
눈 총총 똑바로 뜨고, 꿈꾸는 일 재미나게 이어가며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다.
소멸도 삶의 한 부분. 시작점도 끝점도 선에 포함되고 표현된다. 소년이 규정하는 소실점이다.
선명한. 당당한. 사랑 나누며 아름다운.
(소실점 너머의 우주는 수업이 끝날 즈음의 나에게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오늘 이불킥은 하지 말자. 날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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