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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May 08. 2022

주단 포목 이화

마모의 역사

인천의 한 오래된 동네 상가점포에서 어머니는 40여 년간 한복가게를 운영하셨다.  

간판 이름은 "주단 포목 이화"였고, 동네 이웃이나 손님들이나 어머니를 "이화 상회" 또는 "호섭아"라고 불렀다. 시장에선 원래 그런다.

옆집 천지 포목에서 "호섭아 ~"라고 부르셔서 "네" 하고 달려가 보면 "너 말고 니 엄마".   

이랬던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당시 인천의 핵심 한복 시장은 동인천역 인근의 중앙시장이었다. 큰 규모의 한복집들이 몰려있었고, 

서울의 거상들과 도매거래를 하여 현찰 알부자들이 많다고 소문날 만큼 큰 시장인데,  

어머니의 이화는 그곳과 거리가 먼 변두리 동네 상가에서 삵 바느질 가게 수준으로 출발하신 거였다.

가난한 출발이었지만, 생계형 전투사 여장부 '이화상회'는 악착같이 돈을 버셨고 자식들을 키우시는데 온 젊음을 바치셨다.  

 

요즘 같은 물류/택배 시스템이 없던 시절인지라, 가게에 물건을 채워 놓으려면 서울 동대문시장, 종로 5가  

광장시장에서 원단과 천, 한복 재료 등을 구입해 와야 했다.

조금이라도 싼 값에 물건을 구매하려는 원가 절약의 일환이었지만, 경인선 전철을 타고 가는 시간은 언제나  

꼭두새벽이었고, 다시 인천에 내려오는 시각은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아침이었다.  

당일 장사를 바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의 장사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할 정도로 고단한 강행군의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머니 삶의 모두는 이화의 생이었다.

 

내가 팔다리에 어느 정도 힘이 생길 무렵인 중,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머니의 서울행에 가끔 동행하였다. 전문용어로 '나까마 (사입 삼촌: 구매, 배송 대행)'라고 하는 역할을 위해서다.

30대 후반이던 어머니의 행보는 3 보이상 구보였고 온통 미로 같은 원단시장을 종횡무진 날라다니셨다.  

몇 번이고 어머님을 놓쳐버리고 광장시장에서 길을 잃어 울먹이던 나를, 어머니는 시장통의 뜨끈한  

순두부찌개로 위로해 주셨다. 정신없는 시장 통속에서 먹었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무거웠던 짐들을 이리 끌로 저리 끌고 그렇게 속절없는 세월은 흘렀다. 어머니도 이화도  그 세월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이화가 견뎌오신 삶의 무게 이겠다.


이화도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다야살 (주간다방 야간 살롱)과 같은 단어의 축약처럼,

주간에는 주단 포목 이화 (본업. 한복가게) /

야간에는 이화 포차(혼돈의 80년대, 희망 없고 돈 없었지만 술 고픈 청춘이었던 내 친구들의 아지트 포차.  

셔터 내리고 한잔하느라) /

더 깊은 야간에는 이화장 (지금으로 표현한다면 이화 비앤비. 한잔한 친구들이 자고 가느라) /

다음날 이른 아침에는 이화 분식 (숙취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착한 여동생이 라면 끓여주느라) /

2022년 현재는 이화 글로벌 (부업. 코로나 상황으로 개점휴업상태지만, 엄연한 무역회사 임)

이화는 이렇게 수많은 멀티플렉스 기능을 수행해왔다. 이 또한 추억이 방울방울이다.




그 젊으셨던 청춘의 어머니도 이제 팔순 중반의 연세가 되셨다.

얼마 전, 병원에 모시고 가서 엑스레이 촬영을 한 적이 있다.  

무릎, 허리 관절 모두 연골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통상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다 이렇다는 건조한 설명을 하던 의사는 목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척추 부분을 보더니 상태가 심각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확연하게 굽어져 있는 모습과 뼈 마디마디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흐릿한 이미지.

쉴 새 없이 설명하던 의사도 한동안 말이 없었고, 나를 바라보는 의사의 눈빛에 또한 많은 말이 담겨있다는 것은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지만, 어머니께서 그 고난의 시간을 어찌 버텨오셨을지 어찌 쉽사리 가늠할 것인가.

한복의 무게, 이화의 무게, 자식의 무게, 생계의 무게, 삶의 무게...  

그로 인한 그 희미함은 마모였다.

한 장의 영상 이미지로 보여주는 현재와, 그 마모의 역사를 알기에 느끼는 과거의 기억이 쏟아지면서   

그날의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은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병원을 나서는 어머니는 의사의 걱정스러운 눈빛도 개의치 않으시며, 간호사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하신다.

걸음걸이는 더디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히 쩌렁쩌렁하시다.  

대기실에 있던 모든 시장통 사람들이 미소를 머금고 '이화상회'에게 눈인사를 전한다.

오랜 기간 이화와 산전, 수전, 공중전을 함께해온 정겨운 이웃 전사들이다. 어머니께서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그날의 흐릿한 엑스레이 이미지는 오히려 마모의 역사를 또렷이 분명하고 선명하게 웅변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은 원래 불완전하고 정답이 없다 하지만, 그 역사의 본질은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가득 안고 걸어가는 확고하고 망설임 없는 여정이기에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은 숭고하고 또한 완전하다.  

마모는 그렇게 완전을 향해 가는 순환의 여정이다.


이화도 그럴 것이다.  

흐르는 물처럼.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중년에 맞이하는 어버이날

(시 / 작가 : 이채)


자식의 입장보다 부모의 입장에서

사람과 사물을 생각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자식의 불만보다 부모의 섭섭함이

더 절실해지는 나이, 이제서야 철이드나 봅니다


당신도 그러하셨지요

평생을 기다리는 희망이 바로 자식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간간히 지나가는 발자욱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엇인가를 평생 기다리며 살지 않았던가요


아버지의 하늘이 그냥 높을 리 없고

어머니의 바다가 그냥 깊을 리 없으련만

그 높이에 닿을 수 없고

그 깊이를 볼 수 없으니

내가 부모 되어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당신의 소박한 웃음에는

날마다 자식을 향한 사랑이 흐르고

당신의 감춰진 눈물 속에서

나는 오늘도 신의 기도를 듣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소서. 나의 어머니.  

(2022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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