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섭 May 27. 2024

퇴고의 늪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퇴고를 하고 있었다. 문장을 이리저리 노닐고, 문단을 요리조리 바꾸며 애를 쓰더니 연필을 '탁'놓는다. '탁'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이 상황이 꿈속이란 걸 알아차리고는, 수정한 부분을 잊기 전에 어서 깨어나 메모해 놔야지 중얼중얼 잠꼬대하며 벌떡 일어선다.


아이고, 꿈의 퇴고는 무의식 속에 아스라 한데, 꿈속의 나는,  쓰지 않은 글마저 퇴고를 하고 있었던 거다.

초고도 없는 글을 퇴고하다니... 기괴하다. 기괴하며 웃기다. 기괴하며 웃긴데 궁금하다. 어떤 글이었을까... 기.웃.궁하면서도 요즘의 정신머리가 쑥대머리 되었다는 걸 직감한다. 아이고, 안 되겠다. 상태가 더 위중해지기 전에 서둘러 출판사에 최종원고를 보낸다.


무한 루프 퇴고의 늪에서,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는 정확히 언제인가. 벗님들아, 고수님들아 제발 대답 좀 해주소...

아무 말이 없다. 알 수 없다. 정답 없는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많이 부족한 심력, 필력이겠으나

지금의 내가 최선과 진심을 다했으니,

한 톨 남김없이 울었으니,

마감기일이 다 되었으니...

말갛게 세수하고 쿨하게 이메일 '보내기' 버튼을 꾸욱누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시원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이때의 마음이란 게 그리 간단치 않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묘한 심정일 줄 몰랐다.

부족한 아이들 그렇게도 시집장가보내려고 애쓰고 난리 치던 부모가, 아이들 떠난 빈방에서 자리 깔고 앓아눕는 격이다. 역시, 시원은 섭섭과 어울린다.


하늘은 청명하고 푸르른데

바람은 보기 좋게 다정한데

장미는 깨어나 인사하는데

나는 폭삭 늙어버렸다.


이렇게 오월이 간다.



#인천 #자유공원 #장미원 #방구석 #최종퇴고 #늙는다늙어 #시원섭섭 #걷기 #쓰기 #그리기 #미술관동인천점 #쫑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