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학창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만난 소월과, 흰머리 환갑시절 박연준 작가의 <듣는 사람>에서 만난 소월은 다르게 온다. <진달래 꽃> 시집을 구해 다시 읽어 봐야겠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의 계절은 소월에게도 봄이었다.
아주 가는 건 쌀쌀과 매정이고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은 아련과 절절이다.
"그러한 약속"은 "그리운 약속"이려나.
쌀쌀과 아련이 뒤섞이고 매정과 절절이 교차하는 계절. 봄이 가고 있다.
여름이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한낮의 체감온도뿐 아니라 창문틈으로 우수수 쏟아지는 햇살의 각도와 채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늦봄의 노을은 다정하다. 여름의 노을처럼 화들짝 뜨겁지 않고, 무거운 몸 쓰러지듯 창문 틈 넘어오는 가을의 노을과 다르다. 늦봄의 노을은 친근하다. 겨울의 떨림을 포근히 덮어주고 여름의 진땀을 예견하며 미리 함께 대비한다. 늦봄의 노을은 마음깊다.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하며 처마 밑에서 쓸쓸히 술 한잔 할 걸 알기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며 남은 자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