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혼잣말 (1)

by 김호섭

혼잣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잣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어떤 마음이 깔려 있을까?


오늘의 질문이다. 두 개의 질문이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너. 너. 지금 혼잣말하는 거지. 딱 걸렸어. 독자들의 관심부터 끌려고 초장부터 혼잣말이냐?"

아니다. 자세히 보시라. 마음속으로 말하는 작은따옴표 ' ' 이다.

그러나 저러나 두 개의 질문은 아무리 보아도 그 말이 그 말이다. 하나의 질문으로 줄여보자.

사람들이 혼잣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책이나 자료도 보고, 네티즌에게 물어도 본다. 의료계(정신의학계)나 심리학계 또는 인문 철학계 등등에서 꽤나 많고도 다양한 분석을 해놓았지만, 명징하게 이렇다 저렇다 확정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정답이 있는 건 아닌듯하다. 역시나 Case By Case인 건가?


그렇다면 생생도 슬며시 숟가락 하나 얹어보자.

어떤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보다는 일반 민간인으로서 일상에서 접하고 느끼는 경험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각계에, 무슨 거창하거나 밀도 있는 분석을 제시하여 새로운

생생 띠오리 학설을 세우고자 하려는 의도는 전혀 그럴 리 없고, 개인적으로 가랑비에 옷 젓는 듯한 스트레스가 이제는 가히 폭발 지경이라 어떤 식으로든지 정리해보고 나름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실한 마음에서다.


나도 가끔 혼잣말을 하긴 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나?" "이봐. 자네. 방청소 좀 하지?" 이런 말들을 하는

공간은 오로지 방구석이다. 혼잣말의 본래 정의대로 나 홀로 혼자 하는 말이다. 외로워서 그러는 건 아니고, 워낙 과묵9단인 성향을 좀 개선키위해 수다력을 키우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오늘 들여다보고자 하는 혼잣말은, 개인이 개인의 공간에서 혼자 하는 그런 Case는 아니다.

타인이 곁에 있고 또는 많은 곳에서, 공적인 장소에서 하는 혼잣말 또는 다양한 의성어? 들에 대한 Case 임을 우선 명백히 밝힌다.

혼자가 아닌 곳에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특히 최근에 더욱 그런 분들이 많다는 느낌이 부쩍 든다. 예전에는 잘 느끼지 못한 부분인데 최근에 와서 주변에 이런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은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좀 더 예민해지고 깐깐해 진건가?라는 자아반성도 당연히 곁들인다.




공원에 '만인의 민폐'라는 별명이 붙은 분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나타난다. (나이대는 60 후반으로 보인다.

P라 칭하자.) 산책로에서 자전거를 두 손 놓고 탄다. 뒷짐 턱 지고 누가 봐도 거만한 자세로 위험천만하게 씽씽 타거나, 한적한 공원 광장에서 갑자기 고성방가를 하거나, 어르신 건강 에어로빅 댄스타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추임새를 끊임없이 발성하기도하며 댄스타임 시작부터 끝까지 비 맞은 중처럼 큰소리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린다. (스님 출신인가?)

시끄럽다고 누군가 얘기하면 혼잣말하는데 뭔 상관이냐며 대뜸 싸우자고 덤벼든다. 덤벼드는 대상은 남녀불문, 나이불문이다. 기본이 욕이다.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팔다리를 오뚜기모양으로 휘두르며 걷는 모습은 마치 예전에 땡전 뉴스에 나오던 전 OO 대통령을 닮았다. 이로 추측컨데 군 관계자 또는 군 출신 이리라는 예측도 해봄직 하다. 군출신이건 스님 출신이건 과거에 어떤 일을 해왔고 어디 출신인지가 자유로운 공원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있을까? 그보다는 개인의 습관이나 성향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살아 숨 쉬는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공원 산책길에서 생생은 뒤에서 달려오던 P의 자전거에 치인다. 왼쪽 팔과 몸통에 강한 충격을 받은 생생은 옆으로 넘어지다가 오른편에 설치된 펜스에 부딪쳐 오른팔에도 생체기가 났다. P는 전방 10미터 지점에서 자전거와 함께 나 뒹군다. 갑작스러운 충돌에 생생은 아파서 낑낑거리고 있는데, P는 생생에게 왜 똑바로 걷지 않느냐며 되레 역정을 낸다. 생생과 부닥쳐 넘어짐으로써 새로 산 본인의 하얀 브랜드 운동화에 때가 탓다며 오히려 야단 야단이다.

아니.. 뭐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있는가. 따져 들기도 전에 P는 사라진다.

"저... 저기요. 이봐요. 아니 이런 *%#$###"

생생은 아무리 몹쓸 꼴을 당해도 욕은 하지 않는다. 품격 높은 산책러가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유사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P는 산책러들과 몸싸움, 주먹다짐도 종종 벌어진다.

공중도덕을 아예 무시하는 행태를보니 철저한 민폐형 개인주의 성향의 인물이다.

본인의 시공간이 소중한만큼 타인의 그것도 소중하다는 공동체의 기본원칙은 쌈 싸 먹었는가?

이럴 때 가만히 있을 생생이 아니다. 동석이 형처럼 헬멧 씌우고 진실의 방으로 데려가 참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렴 그럴리가.

그래도 배운 자, 쓰는 자 생생은 구청 공원관리 담당자에게 심금을 울리는 장문의 민원을 넣는다.

구청에서도 오래전부터 P로 인한 민원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렇다 할 제재 방안이 없다 한다.

그래도 생생 선생님의 글에 감동받아 [산책로에서 자전거, 원동기 운행 금지] 현수막을 제작하여 거는 건 어떻겠냐라는 회신이 온다. 그리하여, 현수막이 서너 군데 내걸리긴 했지만, 효과는 잠시뿐이다.

삼사일 뜸하더니 P의 위험한 자전거 질주는 다시 계속된다.

어르신들,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에서 참 무개념의 인간이다. 현수막 앞에서는 나 보란 듯이 비웃음을 날리고, 사람들 사이사이로 곡예 운전을 하는 그를 보며 생생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 조용하고 평온한 공원에서 이 소란스러움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고민의 날은 깊어만 간다.

지역주민들 뿐 아니라, 생생에게도 공원은 무척이나 중요한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모두 함께 소중하게 이용해야 할 고마운 장소에서 이게 웬 미꾸라지인가 말이다.




어느 날인가는, 어르신 건강체조 시간에 P와 어느 여사님과의 싸움이 일어났다. 댄스팀에서 맨 앞줄 센터를

차지하고 언제나 역동적인 동작으로 댄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30대 중반쯤으로 알고 있었던 여사님이다.

팀의 에이스다. 그런데 실제 나이대는 60 중반 이란다. 깜놀이다.(A라 부르자)


P가 하도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고 근본 없는 추임새를 계속 해대니, 참다 참다 열받은 A는 "이봐요. 이것도 강사님이 진행하는 엄연한 수업시간인데 수업 중에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혼잣말로 떠드나요? 아니 이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미치겠네. 진짜"

P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이때, 갑자기 A가 P에게 달려들어 쉴 새 없는 펀치를 날린다. 생전 보도 못한 기이한 상황이다. 여성과 남성이 펼치는 완펀치 리얼 데쓰매치다. 에이스 A의 작은 키를 만회하는 건 개구리 점프다. 펄펄 폴짝 뛰면서 날리는 점프펀치는 역동적이긴 하나 파괴력은 거의 없다.

갑작스러운 선빵에 순간 당황한 P는 초반 수세에 몰리더니 갑자기 무지막지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서슴치 않는다. 이른바 폭력의 순간이다.


다른 여사님들도 합세하여 달려들었으나, 아무리 60 후반의 나이라 해도 남성의 무차별 주먹질에는 속수무책이다. 이러다 큰 사단이 날듯 하다. 생생이 나설 때다. 잽싸게 P의 뒤로 돌아 허리춤을 붙들고 떼어낸다.

"진정하시라..."얘기하는 순간, 생생을 향해 P의 원투펀치가 날아온다.

후훗. 가볍게 피한 생생은 그 주먹을 잡아채 옆으로 비튼다.

(아시다시피 생생은 태권도 1단 + 유도 1단 + 이슬 9단 = 합이 11단의 유단자이다.)

"진정하시라..." 하며 P의 눈을 쳐다본다. 사람의 기세는 눈에서 나오니 생생의 강렬한 눈빛으로 제압하려는 찰나, 아이고. P의 눈은 사람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맞지 않다. 짐승의 눈이다. 초점이 없는 새까만 눈동자는 짐승 또는 동물의 그것과 닮아 있다. 섬뜩하다. 흰자위가 거의 없는 분노 가득한 눈은 어느 먼 허공을 바라보는 듯하다. 눈이 돌아갔다의 눈이 이 눈인가? (어느 책에서는 인간의 눈동자가 다른 짐승과 달리 흰자위가 많은 이유는 타인과 협력, 협조하기 위해 눈빛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여 공감과 협력을 통해 다른 강한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흰자위가 많아졌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다른 강한 동물에 비해 연약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진화론적 설명이겠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생생은 P의 두 손을 제압하고 시간을 번다. P의 버티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근처 지구대 경찰관들이 출동하여 상황을 정리한다. 폭력사태는 당연히 누군가의 연행과 구속이 상식이지만, 구순에 가까운 댄스팀 회장님의 중재로 그날의 사건은 여차저차 무마된다. (마계인천의 어르신들 답다.)


나중에 여사님들로부터 들은 얘기에 의하면, P가 옆동네 공원에서도 하도 물의를 일으켜 그 동네 주민들이

민원신고도 여러 번하고, 집단 항의를 해도 P는 본인의 혼잣말과 추임새에 어느 누가 무슨 피해를 봤냐며 따지고 맞섰고, 급기야, 성질 폭발한 성인 남성 6명이서 P를 숲 속으로 끌고가 집단 린치를 가하여 결국 쫓아냈으며 갈 곳 없던 P는 이곳 공원으로 오게 되어 그 민폐는 여기서도 계속된다는 히스토리다.


여사님들도 회원들도 모두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차분히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건강한 장소에서...

(그런데 말입니다.) 왜 구순 즈음의 회장님이 P를 강하게 제재하거나 댄스팀 탈퇴라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가 여쭤보니 P가 회장님께는 가끔씩 박카스 한두병 안기며 살살거린다는 후문이다. (여사님들의 정확한 전문용어로는 '와이로를 멕인다'이다.) 아이고... 이 무슨 어이없는 상황인가 말이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나, 어쨌든 P의 그 눈빛과 혼잣말은 꽤나 오래도록 생생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눈빛은 마치 생명의 위협을 느껴 대항하는 생명체의 불안과 공포와 맞닿아 있으며, 자기 과시, 인정

욕구 등등 생각보다 복잡한 심리의 기저가 깔려있다는 추론에 이른다. P가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개인적 삶의 경험과 정신생리학적 복잡한 분석은 비전문가인 생생이 다루기에는 버거운 문제이다.

다만 한 가지, (결과론적 의미에서) 집단 린치, 집단 혐오를 당할 정도로 악화된 혼잣말은 그야말로 '위험한 혼잣말' 이라는 점은 명백해보인다.


그저 짜증으로만 일관했던 생생은, P의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의 언저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몇 번 P 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보았지만 주먹부터 쥐고 싸우려는 P의 일관된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다.

생생은 이 문제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다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누구를 변화시키려 하느냐. 내가 변화를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일뿐.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책이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는 그의 기도문 "평온을 위한 기도"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이시여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사실, 라인홀드 니부어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가 사회적 힘, 공공의 힘으로 억압되는 환경에서의 존재적 자율을 위해, 그러한 상황 아래 피해받는 개인이 살아가기 위한 방편의 말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면 P의 경우는 반대적 상황. 즉 비도덕적 개인과 도덕적 사회에서의 경우일까?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너무 깊이 왔다.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한 지점이다.

아무튼, 민간인 생생은 나름의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본다. 일단 대오에서 이탈하여 뒤편 숲 속 먼 곳에서 조용히 건강 에어로빅 댄스를 따라 한다. P를 보면 볼수록 자꾸만 솟아오르는 혐오를 다스리기 위함이다.

계란도 자주 삶아 먹는다. 계란 흰자위를 많이 먹으면 눈동자의 흰자위가 조금이라도 선명해지거나 초롱초롱 빛나리라는 가녀린 희망에서다.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혼잣말 대마왕 한 사람만으로도 일상이 힘든데,

생생의 일상에서 만나는 혼잣말하는 사람이 세 사람 더 있다. 사무실이다. 직접적으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일상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생을 괴롭히는 탈모의 팔 할은 이 때문이다.


(2) 편으로 가보자.


* 글의 쪼개기 신공을 쓰는 이유는 요즘 독자분들은 긴 글을 싫어한다니 가급적 끊어가려는 행위는 친절한 생생이 해야 할 자연스러운 어프로치다.

그러나, 이미 1편만으로도 길고도 긴 글이 되었다.

독자들이 투덜투덜 혼잣말하며 떠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로...


한줄요약 : 직접적인 폭언 만큼이나 위험하다. 구타유발 혼잣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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