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 보고 있나?

딱 기다려!!!

by 김호섭

권상우! 얼마나 멋지고 잘생기고 훌륭한 배우인가.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워너비 몸매의 롤모델은 단연코 권상우다.

너무 울퉁불퉁해서 과하지도 않고, 다소 잘은(?) 생계형 근육도 아니고, 딱 적당하게 보기 좋은 균형 잡힌 몸매와 근육의 소유자다. 이소룡도 물망에 올렸지만 무술가의 근육은 나랑 안 맞다. 이제 와서 싸움에 최적화된 근육을 키워 내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진상들과 한판 붙어 싸워보자는 의도적 속마음이 슬쩍 드러나는건 좀 아니지 말이다.

권상우! 많은 남성들의 로망이다. 나이를 불문한다. 나도 그렇다.



새해벽두에 권상우 사진을 출력해서 떡하니 벽에 붙였다. (나의 신년 다짐 중 하나다. 어쩌면 문제의 발단은 이때가 아닌가 싶다.)

학창 시절에 영어단어, 문장을 벽에 붙이고 자주 보면서 외우듯이 권상우를 외우고자 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권상우를 넘어라!

헬스클럽을 갈 순 없다. 코로나니까.

그렇다고 그간의 어설픈 운동량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단기적 계획은 우선 이렇다.

야성의 도시 인천에서 힘들기로 소문난 <자유공원. 어르신 건강 에어로빅>'이 코로나 방역 완화로 재개된다니 4년간 참여했던 나로서는 반겨맞을 일이다. 슬슬 유람하듯 걷던 산책은 이 운동으로 대체한다. (하프) 푸시업. 하루에 약 200 개 정도 하던 운동량을 늘리자. 하루에 1,000개.

중장기적 조치는 다이어트다. 살 빼기다. 75에서 65 정도로.

목표하는 타깃은 내년이다. 빠름 빠름, 급변하는 격동의 대한민국에서 중장기의 개념 단위는 1년이다. (단기는 3개월. 내 생각이다.) 이 프로젝트는 50대의 끝자락을 지나가는 지금의 내가 60대 멋진 노신사가 되어있을 나에게 선사하는 선물로서 그 목적과 의미를 정의한다.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는 킹스맨의 명언처럼, 권상우에 대한 예의와 매너는 당연히 갖춰야 한다. 열심히 하지도 않고 어떻게 권상우를 꿈꾼단 말인가.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일이다.

이렇게 얼추 유월 중순까지 육개월 정도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다. 담에 걸리기 전까지는...

모두에게 계획이 있었다. 마동석에게 처맞기 전까지는...

이런 말과 어쩜 이리 찰떡궁합일까.




이번에 제대로 담이 크게 와서 걸렸다.

숨을 못 쉴 지경이다. 파워로는 마동석급이고, (몸의) 하프라인에서 (몸의)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치고 올라오는 통증의 속도는 월클 손흥민급이다. 태풍으로 치면 사라급이고, 지진으로 치면 동일본 대지진급이다. 고만하자. 마동석에서 멈춰야 했다. 고통의 강도는 마형의 비유면 충분하니까.


재채기가 트리거링한 담이지만, 여러 글 벗님들과 네티즌, 의료진의 얘기를 종합해 보니 나의 경우는 운동부족은 아닌 듯하다. 운동 과잉에 가깝고 일상생활의 자세 불량에 그 원인이 있겠다.

육개월간 다지고 다져 (마늘이냐? 다지게?) 제법 슬림해진 몸매는, 거동이 어려워 아이구 아이구 침대에 눕기만한 일주일 만에 다시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너무 불공정한 시간과 인체의 처사다. 망가지는 것도 똑같이 육 개월이 걸려야 마땅하고 옳은 일 아닌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이럴순없다. 이를 어디에다 하소연할 것인가. 의욕과 열정이 쪽쪽 빠진다. 문틈과 창틀사이로 새 나간 그것은 동인천을 흐르고 월미도 앞바다를 지나 서해바다의 깊은 심연으로 사라진다. 쫙쫙 빠져나가는 게 보일 지경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었다면 좀 더 시각적으로 표현했을 텐데... 제목은 <문틈과 창틀사이로 흐르는 시선>.




침대와 나란히 한 일주일은 다시 자성의 시간이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욕망하게 된 나의 결여는 무엇인가?

허술한 와장창 앞에서 나는 또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가?


김아야의 물음에 프로이트와 라캉 전문이신 김수영 작가님은 동화책 이야기를 빌어 이렇게 답한다.


내 맘대로 안 되는 나 3탄-2

https://brunch.co.kr/@ksoo36/7


(요약)

욕망이라는 대상 a)를 위해 줄을 당긴다. 처음 당긴 사람은 길을 가다 줄이 있길래 '이게 뭐지?' 당겨보니 팽팽하다. 당기기는 시작되었다. 차츰 여러사람이 함께 붙어 당긴다. 지나가던 어린이가 그들에게 묻는다. "뭐해요?" 본인이 뭘 욕망하는지 잊거나 모르고 "여러 사람이 당기니 나도 당기는 거다." 상대 쪽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도 조금 당기다가 '아,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이었지.' 이내 가버린다.

어린이는 다음에 다시 와서 줄을 자른다

이제 줄은 두줄이 되었고 어른들은 낭패하고 어린이는 두줄을 갖고 논다.

어른들은 그 너머의 원하는 진짜의 욕망이 아니라 줄을 욕망해 당긴 것이다. 욕망도 결여도 제대로 봐야 하지만 핵심은 주체다. 주체적 인식 없이는 욕망도 결여도 진짜가 아니다...여기서 주체적 욕망자는 어린이뿐이다.

(동화에서 그 심오한 철학을 캐내는 대단한 작가님께 존경을 보낸다.)


맙소사, 나는 권상우를 욕망하고 있었던 것인가?

말이 좀 야릇하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급 수정한다.

나는 권상우라는 줄을 욕망했구나.

수많은 다이어터들이 추앙하는 허상에 끌려서 말이다. 나라는 주체가 빠진 채...

당연히 욕심이 앞서고 무리수를 두게 된 거고 그 헛심줄을 담이라는 어린이가 재채기를 타고 와서 쨍하게 잘라준 것이다.


김아야의 욕망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일주일간의 마음 여행을 통해

라캉에서 김수영 작가님으로, 어린이로, 줄로, 권상우로, 재채기로, 담으로 이어져 '쓰는 사람" 나에게 왔다.

그래서 발굴한 답을 쓴다. '다시 주체다'

쓰고 말 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유야무야 뭉개서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하며 또다시 저 심연의 서해바다로 흘려보내지 말고 행하고 또 행할 일이다.

쓰는 사람의, 질문의 힘이고 실행의 힘이다.


궤도수정, 시선의 수정을 하고 다시 실행을 모색해본다.

다분히 다잡고 쫓아가야 할 것은 권상우의 매끈한 복근이 아니라,

나만의 투박하지만 건강하고 또렷하며 살짝 말랑말랑 유연하면 고마운, 나대로의 호흡과 속도에 맞는 몸과 정신이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의, 주체로서 관찰해낸 결여에 따른 또렷한 욕망이다.

그 욕망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자.

그걸 쓰는 자.

그걸 행하는 자.


(유단자는 아니고 가녀린 흰띠지만...)

나는 작가다!


(* 오늘의 교훈 : 권상우님도 김수영 작가님도 동화 속 어린이님도 강호의 고수들이다. 세상에 즐비한 이런 고수들이 내 글쓰기의, 인생살이의 고마운 스승들이다. 함부로 까불지 말자.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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