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담 때문에 알게 된 사랑

by 김호섭

또 담 얘기냐?

이쯤 되면 독자들도 눈에 담이 걸릴 지경이라는 원성이 자자할만하다, "사골이냐? 이런 우려먹을."


하지만 어쩌랴.

천 겹의 세상, 천 겹의 우주가 아니던가.

하나의 꽃을 보아도, 보고 또 보고 자꾸 보아서 꽃이 나에게 말을 걸 때까지 보아야 함이 쓰는 자의 기본자세라는데, 담에 대해서도 찬찬히 들여다보고 최소한 글 세 개는 써보자는 초보 작가의 야무진 각오다.

조금만 참아 주시라. 이제 다 왔다.



별다른 차도가 없던 증상은 닥터 한야메의 말처럼, 신기하게도 딱 7일이 지나자 급격히 회복되는 추세에 접어들었다. 아직 완전한 회복은 아니다만, 닥터 한야메가 이 동네에서 30여 년간 의사 노릇을 해온 게 거저 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야메의 하나마나한 진료상담과 약이나 주사액 보다 실제적인 치유와 힐링을 안겨준 조력자들은 따로 있다.


허리 밴드(복대) : 허리 부위를 돌돌 말아, 경직된 근육을 단단히 잡아주어 저세상 고통을 덜어주는 기능. 유튜브의 AI 알고리즘에 감사함을 전한다. 어떻게 알고...


물리치료사 : "여기는 호흡과 관련된 근육이고, 숨 못 쉬는 이 근육이 놀래서 그런 거니 얘를 살살 풀어줘야

합니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애써준 (100kg + 알파) 거구의 젊은 물리치료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담 때문의 고통보다는 그대의 파워와 중량에 이러다 압사할 것 같은 공포가 더 컸음을 슬며시 고백한다.


인천 테크노파크 해외마케팅 전문위원 : 정기 미팅 때 나의 한심한 상태를 보고, 자신의 경험에 따른

직방 만점, 효과 만방 체조법을 시연해 주셨다. 팔 굽혀 펴기 자세에서 다리를 번갈아 위로 올리는 자세다.

오픈된 카페의 소파 위로 올라가 구두까지 벗어가며 역동적인 자세를 수차례 시연해 주신 위원님.

고객의 아픔에 공감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진정한 컨설턴트이시다. 카페 손님들 모두가 쳐다보는 바람에

다소 부끄러웠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감사함을 전한다.


동네 OO친구들 :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 할 얘기도 많고 마실 술도 밀렸으나 술을 애써 권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너희들은 고맙다. 이제 절제를 아는 희끗한 나이들이 된 걸 보니

어즈버... 청춘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자유공원 사람들 : 주말, 복대를 풀고 공원 어르신 에어로빅을 살살 쫓아했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물려 오시

더니, 사망한 줄 알았다... 겨우 담 때문에 1주일을 빠지냐... 한심하다는 표정을 잠시 지으시더니 무슨 약, 어디 병원, 어떤 음식이 좋다는 천기누설 민간요법들이 한아름 쏟아진다. 평소에 뒤 구석에서 존재감 없었던 나에게, 나만 모르는 사이에 어머님들의 관심과 애정이 넘치고 있었고 이제 도도히 흐르는 시간이다. 아버님들은 저 멀리서 쳐다보신다. 그 과묵의 눈빛에 담긴 걱정을 알기에 살짝 눈물도 났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글 벗님들 : 밤이고 낮이고 차도를 물어봐 주시고 염려해 주시며 아픔을 함께 해주셨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

(라라 크루)에서 만난 지 채 한 달이 안된 듯한데, 집안 식구들 같다. 소중한 인연임에 틀림없다. 마땅히 감사함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 : 아들의 아픔을 묵도하시고, 바로 다음날부터 몸져누우셨다. 소화도 시원치 않으시고 몸에

힘이 없고 걷기도 여의치 않으시다. 삼 사일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셨다. 화들짝 놀란 아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누이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큰일이다. 누이 부대의 본진이 투입되면 그 즉시

데프콘 완*이다. 조기수습이 필요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허리가 쭉 펴지고, 담 통증은 어디로 갔는가? 어머니 손을 꼭 잡고 한의원으로 향하는 그 모자의 실루엣은 다시 역사가 된다. 복부에 침뜸 치료를 받고 나오시는 팔순 소녀의 모습이 해맑다. 김아야는 엄살 9단, 어머니는 역시 인생 9단 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자식의 아픔을 당신의 몸으로 끌어당겨 경직된 에너지의 드라마틱한 순환을 일으키시는 무의식의

흐름 또는 메커니즘은 21세기 최첨단 과학으로도 설명이 안된다. 그 평생의 헌신과, 아픔을 몸소 사랑으로 실천하시는 초능력에 한없는 감탄과 존경을 보내드린다.




자. 어떠한가.

한 아이가 태어나면 온 마을이 나선다는 말이 있다.

한 아저씨가 아파도 온 마을이 나선다. 맞다. 난 원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존재 자체로서의 의미 말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극세사처럼 촘촘히 펼쳐져있는 손길, 눈길, 사랑길이 온누리에 이렇게 풍성하고 애정

다정할 줄 미처 몰랐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고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의미를 두지 않았고 나의 글로 쓰지 않았을 뿐이다.

주변을 좀 살펴보며 살아야겠다. 과한 오지랖을 부리자는 얘기는 아니고,

세상을 좀 더 농도, 밀도, 채도... 심도 있게 다채롭게 바라보자는 얘기다. (늘 받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어디 담뿐이겠는가.

흘러가는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잡아채어 열린 마음으로 봐야 할 일이다.

쓰는 사람이 애써 갖추어야 할 관찰의 힘으로 말이다.


* 데프콘 원 : (군사용어) 정규전에 대비하여 전군에 내려지는 전투 준비 태세이다. 1∼5단계로 나뉘어 있고

숫자가 낮을수록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병과의 전쟁을 의미함.

keyword
이전 07화권상우. 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