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아플까?

열아홉에서 스물다섯 사이

by 김호섭

'터걱, 딸깍' '터걱 딸깍'...

유연하게 잘 돌아가던 선풍기가 어딘가에 자꾸 걸려서 비명을 지르며 내는 소리이다.

'이 인간아, 여기 좀 살펴봐!'

잠에서 막깬 김아야는 선풍기(예명 : 신바람)의 비명을 듣고 상황을 살핀다. 싱크대 아래 걸어놓은 1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그 원인이다. 부쩍 몸매가 불어난 쓰레기봉투에는 약 봉투, 약 병, 파스 껍질, 햇반 용기, 이외 온갖 일회용 용기들이 와글와글하다. 신바람의 원활한 회전을 방해하는 자들이다.

신바람이 놓일 위치는 그곳뿐이라 어디로 이동하기도 불가하다. 신바람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얼추, 담의 고통에서 벗어난 7월 초. 폭염의 날씨다.

시인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7월의 포도와 청포를 입고 올 손님을 염원하는 마음을 참으로 근사하게 표현하셨지만, 2022년 7월의 김아야는 포도뿐 아니라 사람마저 익어버릴 폭염과 담 통증으로 그저 오롯이 짜증을 맞이할 뿐이다. 짜증을 멋진 시로 표현하기에는 역량 부족이다.

짜증에도 색과 맛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색, 어떤 맛일까? 아마도 열불 터지는 붉은색 계열일 테고, 먹지 않고 냉장고에 오래 두어서 상해버린 두루치기 맛? 생각만 해도 두루두루 짜증 지데루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그것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내 삶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는 오로지 나이기에 이 시점에 달콤한 이벤트를 슬며시 끼워 넣는다. 커피다.

호기롭게 대문을 나선 김아야는 일전에 봐 두고 찜해두었던 공원 근처 신장개업 카페로 향한다.

카페 이름은 '스물, 다섯'이다. 내 나이가 올해 열아홉이니 나는 충분히 입장해도 될 터이다.

모처럼 쾌적한 공간에서 아아와 함께 독서도 하고 글도 좀 쓰고 하면서 오랜만에 사람다운, 작가다운 시간을 즐기려는 바램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몰아치는 것은 북극 한파다. 널찍한 카페 공간은 에어컨 냉기가 사람보다 가득하다. 시원이 넘쳐 이가 시리다. 여기 사장님은 아마도 시원시원하신 분인가 보구나. 어쿠야. 시원타 ~


세 시간 정도 집중의 시간을 보낸 뒤,

카페 문을 열고 나섰는데 갑자기 코에서 주르륵 무언가 흐른다. 처음에는 코피가 나는 줄 알았다.

내가 너무 열심히 책을 읽었나? 하여튼 이 인간의 집중력이란, 후훗 하며 확인한 것은 맑은 콧물이었다.

콧물쯤이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또다시 아픔의 시간이 오리라는 것을.

그날 밤부터 몰아치는 기침과 재채기, 몸살, 인후통, 오한, 고열, 두통...

쏟아지는 기침에 가까스로 달래 왔던 담 통증까지 옳다구나 합세해서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의 밤이다.

그러나 이번엔 김아야는 당황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는 다시 아파져 버린 허리를, 한 손으로는 쑤셔오는 목을 부여잡고 긴다. 다시 침대로...

이때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포복 자세이긴 하나, 약간의 응용동작이 필요하다. 한 손의 팔꿈치만을 활용하는 고난도 동작이다. 나는 강원도 철원 G.O.P 육군 병장 출신이다. 그럼.

그런데 기면서 좀 우울해졌다. 다른 아픔의 여러 증상보다도 겨우 안정단계에 접어든 담 허리 통증이 속상했다.

다시 아프다. 겨우겨우 달래 왔는데, 너무너무 억울하다.


주말이 지나고 이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고 코로나 증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인식을 하면서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들 결혼식이 코앞인데 혼주인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이거 정말 낭패가 아닌가.

회사에 다시 연차를 내고 병원 가서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이다.

의사 선생님은 '냉방병으로 인한 목감기, 코감기'로 나의 병을 진단한다.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거나 춥고 더운 온도의 급격한 차이에서 오는 신체의 온도조절 기능 오류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아.. 오류 많은 나의 신체여. 살아온 인생 궤적에 오류가 많은 것도 어쩌면 이 허술한 몸 때문인가?

왜 자꾸 아픈가?

육십 년 가까이 이 지구별에서 살아왔으면 이제 웬만한 병치레나 질병에는 이골이 날 법도 한데,

매번 다가오는 아픔은 어쩌면 이리 신선한가? 심지어 로켓 배송이다.




브런치에서 책 리뷰로 유명한 PSH 작가님의 글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책 -로드러너- 리뷰)

https://brunch.co.kr/@thepsh-brunch/191#comment

[ 일론 머스크는 ‘세계 정부 정상회의’에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교정적 피드백 순환구조 Corrective Feedback loop를 만드는 것’이라 답한다. 즉 자기 주변 사람들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려고 할 때조차 나와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업실패나 오류로부터 교정을 위한 주변의 진실된 조력자의 중요성을 설파한 사업가의 식견을 엿볼 수 있다. 훌륭한 글을 써주신 PSH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여기서 김아야는 교정에 주목한다.

성공적인 사업을 위한 통찰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마음도 이런 교정적 순환구조가 필요하겠다는 작은 생각은 이렇게 정리된다.

'살아가면서 어짜피 몸의 아픔은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일상일 테니 교정적 피드백 순환구조를 통해 다음번 아픔에는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아픔을 맞이하고 대응하자. 마음도 마찬가지일 테고...

다시 그 실패를, 아픔을 방지하기 위한 습관이나 자세도 개선하는 효과도 있겠다. 그 순환구조의 조력자 중 가장 핵심적 주체는 나다. 우선 인지를 해야 하니 말이다.'




몸도 마음도 다양한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아픔 또는 슬픔이라는 우리의 감각과 감정을 이용하여 전해진다. (다른 감각과 감정도 그러하겠지.)

왜 자꾸 아프냐고 짜증 한 사발 퍼마실게 아니라...

결국, 아픔을 대하는 슬기로운 태도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 노력 없이 전 자동으로 다 체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그 순간마다 치열하게 몸과 마음의 신호를 보고 제대로 교정하고 응답하는 순환의 과정에서 얻게 될 것이다. 이는 더 넓고 깊은 지혜의 호수에 이르는 길이기도 할 터이다.


여름철 출퇴근할 때와 외출할 때는 이제 긴팔 셔츠를 하나 챙긴다.

뭔가를 생각하고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김아야가 한 계단 성숙해 보인다.

열아홉에서 이제 스물다섯쯤 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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