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골드 비즈 최고의 투톱 스트라이커들은 환상적인 티키타카를 구사하며 아야의 허술한 왼쪽 몸매 터치라인을 따라 치달리어 윙백 수비라인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자칭 K-동네 리그 최고의 수비라인이지만 속수무책이다. 워낙 찰나의 일이니까.
그래도 마지막 문지기인 아야의 동물적 운동신경 덕분에 머리와 몸을 비트는 슈퍼세이브가 펼쳐진다.
배는 얍! 하고 숨겨진 복근으로 벌의 침을 밀어내고 다리도 살짝 비틀어서 피해는 크지 않다. 스코어는 4:0 이 될뻔한 2:0이다. 졌지만 잘 싸운 게임이다.
문제는 코와 팔이다. 왼팔에 들려진 장바구니의 무게 때문에 팔에는 미처 손쓸 틈이 없었다. 즉시 벌겋게 부어오른다. 제대로 한방 먹었다.
코가 얼얼해진다. 챔피언 알리한테 한방 맞은 듯 묵직하고 알싸하다.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아야는 달린다. 싱크대로.
수도꼭지 찬물을 틀고 코를 들이댄다. 자세가 별로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아무리 보는 사람 없어도
인간의 존엄과 품위는 지켜져야 한다.
손에서 가장 가까운 그릇을 집어 든다. 수년 전 지인에게 선물 받은 다이소 얼룩무늬 커피잔이다. 잔 받침은 깨져서 없다. 지금 그 커피잔을 받게 된 사유와 잔받침이 깨진 사유를 세세히 설명할 겨를이 없다.라고 또 글을 쓸 시간도 없다.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하다가 자꾸 딴 길로 새는 이 삼천포를 탓하고 마시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다.
허겁지겁 커피잔에 찬물을 담고 코를 담근다. 그 유명한 '접시물에 코 박고...'이다.
이게 뭐 하자는 씨츄에이션인가. 이 자세 또한 별로다. 기괴하고 웃프다.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안 되겠다. 욕실 샤워기를 틀고 차디찬 물줄기에 온 몸을 맡긴다. 옷을 입은 채.
어쩌면 그런 책들과 거장 작가들필력의 화려함에 한껏 매료되어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시절에,
글은 또는 책은 이래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설정해 놓았고, 만약에 내가 글을 쓴다면 당연히 이런 글을 멋지게 써야지 그렇게 쓰겠지 라는 야무진 각오를 다지던 시간이 있었다.
(또 다지냐?... 그렇게 다지다 세월 다 보냈다. 인간아.)
하지만 그런 묵직하고 번쩍이는 글을 쓰기에는 내가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까지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장들의 어마어마한 그릇에 담긴 사색과 통찰, 고뇌와 번민이 버무려져 번쩍이고 묵직한 한방 있는 글이 된다는 생각을 해보면 나의 그릇은 그저 삼천원짜리 잔받침도 없는 덩그러니 다이소 얼룩무늬 커피잔도 감지덕지라는 것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바로 알게 된 현실이다.
또한 그들의 한방이 그냥 어느날 툭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넓고도 깊은 사유와 숙성의 시간이 그 한방과 함께하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아야는 그렇다고 예전처럼 위축되거나 쭈글거리진 않는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상, 난 예전의 내가 아니다.
거장들을 그저 부러워하거나, 빛나는 작가님들과 비교만 하고 한숨 쉬느라 방구석을 꺼뜨리진 않는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저자 @배지영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브런치) 작가 이전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만의 작은 그릇 속에서도 작은 나비의 날갯짓을 노릇노릇 펼치자. 오롯이 나의 우주를 헤엄치듯 유영하면서 건져 올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내 인생의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면 고마운 일이겠고,
도끼처럼 벌처럼 쩍쩍 번쩍 얼얼하지는 못해도 어느 누군가의 험난한 인생 여정에 친구가 되어줄 반딧불이 같은 쓸모라도 있다면 감사한 일이겠다.
작은 자전거든 큰 자전거든 작동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초보의 작고 여린 날갯짓으로 부푼 숙성은 더 큰 그릇으로 더 큰 자전거로 옮겨가리라. 긴 호흡으로 몸으로 밀고 가는 꾸준한 반복이 이를 가능케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