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하는 건 기꺼이 책임지는 일
대개 긍정한다는 건 부정한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부정하는 것이 무언가를 치우고 어디선가 빠져나오는 일이라면, 긍정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직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략)
긍정한다는 건 긍정적인 것과 다르다. 더러운 것을 외면하고 예쁜 것에만 주의를 돌리거나,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수긍하고 낙관하는 일인 '긍정적인 것'에 헤겔은 고개를 젓는다.
그의 긍정은 차이, 어리석음, 우연성 같은 '부정적인 것'의 침투에 열려있는 긍정이다. 나아가 부정성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긍정이라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투에 한없이 열려 있기만 한 건 아니어서, 이 긍정은 그 모든 침투를 내재적으로 가로질러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통일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주체를 상정한다. 주체의 성립 조건인 타자라는 구도의 필요조건으로서 주체랄까? (중략)
그렇다면 긍정하기는 '나'를 복수화하는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상에 대한 판단을 세우기 위해 '나'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동시에 가까워져야 한다. 삶이라는 구조물을 제대로 대하기 위해서는 멀리서 그것이 속한 체계를 바라보며, 한편 가까이에서 그것의 구성요소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이질적인 면들조차 '구조물에 대한 것'으로 함께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한다는 건 대상을, 또 세계를 복수화해 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긍정의 진정한 대상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상이한 힘들이 대상에서 맺는 관계일 테다. (중략)
결국, 긍정한다는 건 기꺼이 책임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