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생명체의 낙하

긍정하는 건 기꺼이 책임지는 일

by 김호섭

기분이 계속 가라앉는다. 마음이 계속 무겁다. 왜일까?

여름 끝자락에 이래저래 지쳐, 기력이 많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기력과 기분은 다르다. 3개월 동안의 글쓰기 모임이 막상 종료되고 나니, 긴 시간을 달려온 뒤의

허허로움 인가? 이건 기분인데...

그럴 법도 하겠다. 나름 진심이었으니까.


주말이 지난지도 삼사일이 지났고 다음 주말이 코앞이지만, 무거운 마음은 계속된다.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이다.



지난 토요일 AM 05:10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어졌다. 새벽 공원 산책시간이다. 동은 아직 안 텄다. 아직 저 멀리 있으니 먼 동이다.

어제 낮과 밤에 엄청난 비와 바람이 쏟아져 공원을 오르는 길엔 다양하고 수많은 나뭇잎들이 뒹군다. 이런 길을 오를 땐 좀 더 조심을 기울여야 한다. 바닥의 잎사귀들에 슬쩍슬쩍 미끄러움, 반짝반짝 맨지러움이 가득하다.

중간쯤 올라설 무렵 "우지지 지지지지끈, 투 더 더덕" 좌측 돌담 위쪽에서 들려온다. 이 새벽에 누가 무슨 작업을 하는가 올려다보는데...

낙하한다. 나뭇가지다. 생생*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돌발을 외치며 잽싸게 한두 걸음 후진한다.

(*생생은 매번 아픈 이야기만 하던 아야가 아픈 이야기만 줄기차게 계속하니 자꾸 아픈 일이 생기는 듯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새로 발견한 아이다. 김생생이다. 눈빛 또렷하고 기운 생생하다.)

눈앞 5미터 앞에 우당탕탕 떨어진 나뭇가지는 길이가 대략 5미터, 두께는 15cm 정도 되는 중견 가지다.

잘디잔 영세 잔가지가 아니다.

허이구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5초 정도만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나섰다면, 저 나뭇가지는 내 머리 위에 곧바로 폭 꽂혀 아픈 얘기만 하던 김아야는 본의 아니게 인류 최조 나무 인간이 될 뻔했구나.라는 희한한 생각 하나.

저 나뭇가지에 정통으로 맞아 꾸역꾸역 병원에 실려갔다는 아픈 이야기 글감을 만들려는 어설픈 작위 하나.

'이번엔 아플뻔한 이야기라도 써보려는 거 아니냐?' 독자들의 이러한 원성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 허튼 고민 하나.

이런 고민들을 잠시한 것도 고백한다.


바닥에 뒹구는 그 아이를 다시 찬찬히 바라본다. 부러진 부위의 새하얀 단면이 보인다. 더 시리게 하얀 뼈가 보인다.유혈이 낭자하다. 아리고 쓰리다.

오랜 세월 키워 온 나뭇가지에 머금은 물과 바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버틸 수 없었던 고목.

나무 전체의 생존을 위해 그가 내린 고독한 결정과 선택. 그 뼈아픈 고통이 보인다. 부모의 마음이 보인다.

아니면, 어느 인간이 지나가다 그 나무에 걸어놓은 마음의 고통이, 그 누군가의 마음이 이 순간 추락하여 나무도 함께 그 고통을 내려놓은 것인가?

어떤 이유였던 바라보는 생생의 마음은 무거움이다. 현장 사진을 찍고, 나뭇가지를 바로 옆 풀숲으로 끌어 놓는다. 그 속에서 평안하여라. 경건히 성호를 긋고 다시 산책길에 오른다.


지난 일요일 PM 13:00

다음날이다. 생생은 일요일마다 동네 커피숍에서 일요 커피타임을 갖는다. 이 타임엔 손님도 거의 없어

독채 단독 전세 작업실이다. 느긋한 독서와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쓰기도 곁들인다. 일주일 중에 이 반나절의 커피숍 2층은 커피와 잔잔한 음악과 함께 녹아드는 문화 소비와 문화 창작의 시공간이다. 아주 부르주아다.

다음 코스는 장보기. 커피숍에서 나와 바로 옆에 위치한 신포 국제 시장으로 들어선다.

코로나 확산 추세지만 시장통은 북새통이다.

시장 골목 끝무렵에 다다르자. 몇 사람이 모여 웅성 인다. 어깨너머로 보니 아기 고양이다.

"어머, 어머 어떡해... 저 위에서 떨어졌어..."

"아직 살아있는 듯한데, 어떡해 어떡해..."

바닥에 버둥버둥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아기 고양이의 몸은 약 15cm 정도도 안된다.

아주 아주 아기 고양이다.

"아이고, 안타깝다." 눈길 한번 주고 생생은 가던 길을 간다.

바로 끝나는 시장통을 나와 코너를 돌자마자

'작가라는 인간이 그냥 가는 거냐? 이게 무슨 처사인가? 그러고도 니가 작가냐? 작가로서가 아니어도 이래선 안된다. 이 매몰찬 인간아.' 마음의 따끔한 소리다. 후다닥 뒤돌아선다.

"비켜봐요. 비켜봐.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나요?"

"5분도 채 안 되었어요." 찬누리 닭강정집 이모님이 말한다.

어떡해만 외치며 사진만 찍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나 생생은 이번엔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 스러져가는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뭇가지의 사진은...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지만,

지금은 이머전시. 비상사태다.

인간들의 틈을 비집고 생생은 산업 안전 공단에서 배운 심폐소생술을 즉각 실시한다. 손가락으로 아기 고양이의 희박한 맥박이 전해진다. 아.. 이 가녀린 생명체여. 어미는 어디 있느냐. 동시에 바로 119에 전화를 넣는다. 119 대원들이 출동하기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아기 고양이는 이미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내가 새벽에 5분만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이 낙하의 순간에 기적처럼 받아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무거운 마음 달래며, 생생은 그 여린 고양이의 한 줌도 안 되는 머리를 쓰다듬고 성호를 긋는다.




마음 아래 가라앉은 무거움은 지난 주말에 마주한 두 생명체의 낙하였다.

시간과 운명. 이 두 단어 앞에.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연약한 존재성이겠다. 유한함 이겠다.

그런데 이 두 생명체의 낙하와 지나가던 어느 어설픈 한 인간과의 조우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이 두 생명체의 낙하를 그저 우연한 일 또는 먼지처럼 사사로운 일 등으로 부정적으로 봐야 하는가?

어쩔 수 없는 생명체의 한계이니 이 세상에 늘 일어나는 일. 그저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가?

생생은 다시 책을 뒤진다. <<뭔가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에서 윤아랑 작가는 부정적 또는 긍정적이라는 용어와 부정하다, 긍정하다의 용어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말한다.

대개 긍정한다는 건 부정한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부정하는 것이 무언가를 치우고 어디선가 빠져나오는 일이라면, 긍정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직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략)

긍정한다는 건 긍정적인 것과 다르다. 더러운 것을 외면하고 예쁜 것에만 주의를 돌리거나,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수긍하고 낙관하는 일인 '긍정적인 것'에 헤겔은 고개를 젓는다.
그의 긍정은 차이, 어리석음, 우연성 같은 '부정적인 것'의 침투에 열려있는 긍정이다. 나아가 부정성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긍정이라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투에 한없이 열려 있기만 한 건 아니어서, 이 긍정은 그 모든 침투를 내재적으로 가로질러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통일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주체를 상정한다. 주체의 성립 조건인 타자라는 구도의 필요조건으로서 주체랄까? (중략)

그렇다면 긍정하기는 '나'를 복수화하는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상에 대한 판단을 세우기 위해 '나'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동시에 가까워져야 한다. 삶이라는 구조물을 제대로 대하기 위해서는 멀리서 그것이 속한 체계를 바라보며, 한편 가까이에서 그것의 구성요소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이질적인 면들조차 '구조물에 대한 것'으로 함께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한다는 건 대상을, 또 세계를 복수화해 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긍정의 진정한 대상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상이한 힘들이 대상에서 맺는 관계일 테다. (중략)

결국, 긍정한다는 건 기꺼이 책임지는 일이다.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머리를 쥐어박던 문장들이 웬일인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대상이나 사안에 대한 입체적이고 세밀한 판단, 주체의 상정, 그것은 마음속에 여러 마음들 간의 열린 관계가 본질이다. 그러함으로, 긍정한다는 의미는 책임을 기꺼이 안아내는 일이다.

생생은 생각해본다. 가던 길을 되돌려 후다닥 현장에 뛰어든 행위 자체를 작가의 말처럼 긍정하고 책임지는 마음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또한 이 무거움을 긍정하고 책임지어야 할 일이란 얘기다. 나만의 생각을 좀 더 파고들어야겠지만... 아무튼, 무거운 마음의 뿌리를 찾았다.

생생은 이 두 생명체의 낙하와 우연한 조우를 긍정하기로 한다. 작거나 우연한 일 일지언정, 의미가 있고 뜻이 있으리라.

고통스러워도 결정해야 하는 고목의 선택. 이에 대한 존중과, 풀숲과 119 구급대 차안에서의 안식이 있을 것이고, 시장통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발동동이 있었다. 손가락 끝에 전해온 생명체간의 아련한 소통이 남았고,

땀 뻘뻘 흘리며 달려온 구급대원들의 소명의식이 반짝이며 빛난다.

시간과 운명, 거스를 수 없는 큰 힘 앞에도 함께하는 것은 지구별에 살아 숨 쉬는 호흡하는 모든 공동체의 연대이고 포기하지 않는 시도이다. 그 자체는 모두 주체적이다.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두 생명체의 평안한 안식의 시간을 소망함으로 달래 보며

무거움을 긍정한다. 기꺼이.




소멸과 풍화, 죽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기적같이 대하며 더 또렷이 생생히 살아가야,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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