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쯤, 아들은 결혼식 일정을 1년 뒤인 2022년 10월 가을 경으로 잡겠다는 계획을 알려왔다.
1년이나 Term을 둔 그 계획에,
"아들아. 이 결혼식을 가능한 앞당겨라." 김허당은 짐짓 엄숙한 어조로 아들에게 조언을 한다.
코로나의 중장기적 추세와 새로운 변이의 출몰그리고 확산, 러-우 전쟁, 국제유가, 환율 급등, 국내 정치 동향,
혼주인 김허당의 들쭉날쭉한 건강상태 등등의 다양한 변수들을 심층 분석해서 그렇게 판단했을까?
그럴 리가.
하루라도 빨리 며늘아가를 보고 싶은 마음이 99프로,
가뜩이나 복잡한 복잡계 세상, 더 복잡한 변수가 생기기 전에, 그놈의 지긋지긋한 변수가 뭐 하나라도 적을 때 속히 진행함이 맞겠다는 마음이 1프로, 합해서 100프로! 찬호형의 꽉 찬 가운데 직구 같은 또는월클 손흥민의 아름다운 감아차기 궤적 같은 회심의 판단에서다.
아들은 일정을 앞당겨 7월로 택일, 모든 일정을 착착 준비한다. 아빠는 뭘 해야 하냐? 물었더니 아들은 제가 알아서 다 진행할 거니 아빠는 그저 식장에 오셔서 혼주 자리에 편안히 앉아만 계시면 된단다. 신랑 신부가 알아서 다 준비한단다.그게 요즘 결혼식 트렌드란다. 양가 간의 주단 포목 예단, 함 사세요. 그런 건 없어진 지 오래. 그러구보니, 그럴 법도 하겠다만... 녀석이 아빠의 처지를 배려함이 배경화면에 깔려 있음을 아비는 알고도 모른척한다.
장가가는 아들에게 경제적으로 넉넉히 도움 줄 수 없는 아비의 마음은 그저 미안함과안타까움으로 가득한데, 꼼꼼한 김허당을 쏙 빼닮은 아들의 일처리는 신속, 정확하다. 대견할 뿐이다. 다 컸다. 혼자서 컸다. 부족한 아비는 자꾸만 미안해진다...
코로나 방역 완화가 재개된 시점이 올 5월 초쯤으로 기억된다. 이제 다시 새로운 변이의 확산이 예상되는 뉴스가 연일 계속된다. 곧 다시 방역이 강화되겠지. 그러니 10월에서 7월로 앞당긴 일정은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가정의 대소사 중 결혼식은 봄, 가을에 거행하는 게 보통의 상식이리라. 코로나 이전얘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된 일상 중에 이제 결혼식을 열어야 하는 계절이 봄,가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결혼식에 적합한 시점은 이제는 계절 불문, 오로지 방역조치가 완화되는 시점이다. (아니면 온라인으로 하던가, 생략하던가.) 문제는 방역조치가 완화되는 시점을 쉽사리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보통 6개월 전에 결혼식이니 신혼여행이니 관련된 모든 제반 사항을 예약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다양한 변수, 변이의 출몰과 변화의 속도가 너무도 빠르니 이를 따라 잡기에 숨이 벅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이미 우리 일상 한복판에 와 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도 살짝 언급한 바 있지만,
사람도 세상도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 시대 -> 변즉통 (변하면 통한다) 시대 -> 변즉존 (변해야 존재한다) 시대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성장, 효율의 가치뿐 아니라 존재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변화된 결혼식 모습을 좀 더 들여다보자.
하객 인원 제한이 있었다. 식장에 와서 마음껏 축하하기도 애매해진다. 하객이 많아도 적어도 이도저도 애매하다. 지금은 인원 제한이 없지만, 코로나가 좀 더 확산되면 언제든 다시 제한될 노릇이겠다.
아울러, 주례가 없단다. 역사와 전통의 주례사는 이제 흘러간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고, 모든 주례 전문 선생님은 졸지에 실직자가 돼버렸겠지. 그 공백을 아버지 덕담으로 대체한단다.
아니, 누가. 이런 전대미문의 이상한 제도를 만든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의 허가를 득 하였는가?
난 그런 적 없는데? 바득바득 우겨봐야 소용없다. 변해야 존재하니까.
김허당은 5월 초부터 부랴부랴 정보 조사에 들어간다. 아버지 덕담이라니 허이구야. 세상사 만만한 일이 없다. 또다시 진땀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버지 덕담내용은 거기서 고기다. (갑자기 고기가 땡긴다. 이와중에도 김허당의 유머는 살아 숨쉰다.)
그래도 명색이 브런치 작가인데 거기서 고기인 내용으로 덕담을 할 수는 없을 터이니, 의례적이거나 오피셜 한 내용으로 윗부분을 채우고 아랫부분에는 짧은 글을 추가해본다. 이 아버지 덕담은 Version 0.1부터 0.8까지 퇴고를 거듭하며 김허당은 산고의 진통을 겪는다. 제법 작가스럽다.
A4 3매 분량 정도의 덕담은 제한된 시간과 식장 매니저의 권고로 1매로 단축되어 의례적이거나 오피셜한 윗부분만 채택된다. 그래서 Version 1.0으로 정리되고, 정작 당부하고 싶던 짧은 글 덕담은 세상에 발표되지 않는다.
하지만, 허당은 그리 만만한 인간이 아니다. 이렇게 브런치에 그 흔적을 슬며시 남기니 훗날 역사가들은 말할 것이다.
정사에는 없지만 야사에 이런 짧은 글이 떠돌았었다.라고.
윗부분.
우선 소중한 시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들과...(중략)... 모든 가정에 만사형통,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