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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신

by 김호섭


●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공부] 2025.3.28


1. 원문장

버리는 신이 있다면 줍는 신도 있다.

(捨てる神あれば拾う神あ) - 일본 속담


2. 나의 글 : <희망의 신> - 문학소년

어제 점심시간에 잠깐 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문장이다. 인간을 고뇌와 고통의 바다에 무한정 버려 버리는 신이 있다면 줍줍 주워서 정성스레 건져 올리는 신도 있다는, 어찌 보면 엉뚱하면서도 기괴한 상징의 문장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다정한 문장이로다'는 감탄이 절로 난다. 큰 산불로 환난과 애통에 빠진 온 국민을 토닥이려, 어느 선한 라디오 작가가 선택한 문장이려나. 역시나 속담은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장르다. "속담은 두꺼운 고전책을 한 줄로 압축하고 정제한 ZIP 문장이다." 이렇게 정의해도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싶다.


반찬으로 나온 까만 콩장을 입 속에서 오물오물 굴리 듯, 이 문장을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려본다. 삶의 지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지고 깊은 내공이 누적된 문장의 깊이가 속담의 본질이라 보는데, 일본 속담이라니 괜히 심통부터 부린다. 쳇. 부러워하지만은 않는다. 그래? 어디... 보자.


한국 속담에도 이런 속담이 있다. 우리네 선조들이 어떤 분들인데 비슷한 속담이 없을 리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적절한 비유라기보다는 유사한 맥락의 뉘앙스로 보자면) 어떠한가. 천. 지. 인. 을 아우르는 거대하고 웅장한 스케일이. 다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일본 속담보다는 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가. 하늘이 와르르 무너졌는데, 솟아나는 우리라니요. 무언가 차오른다. 한 많은 민족이라 그런가, 속담조차 한오백 년쯤 묵은 듯하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한 오백 년 님아 같이 살자는데, 대한민국아 솟아오르자는데 하늘아 화마야 웬 성화냐.


일본 속담이든 한국 속담이든, 화자의 의도와 문장의 힘은 분명 뒷부분에 있다. 그 메시지는 삶의 이런저런 시련에 지친 민중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의 강력한 위로다. 시련의 신에 대척점에 서 있는 건 늘 희망의 신일테니 말이다.


어쩌면 희망은 국경과 국가를 떠나서, 호모 사피엔스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따라온 가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생존과 존재의 진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치열한 저항. 그 희망봉의 최전선에서 파랑새를 바라보며, 이리저리 돌려 말하고 때로는 구체로 선명하게 직설하고 은유로 추상하는 자. 세상과 인간을 관찰하고 선언하며 대변하는 자. 바로 그 자가 우리네 가열찬 작가들이 아닐까? 어후후 또또또 무언가 차오른다. 작가들의 고고한 대열에 남들 안 볼 때 슬며시 한 다리 걸쳐본다.


속담 한 문장에서, 콩장 한 스푼에서, 인류라니요. 멀어도 너무 멀리 왔다. 됐고, 덜컹거리던 전두엽이 드디어 <나의 문장>이랍시고 아웃풋을 내놓는다. 좀 어설프지만 밥 먹다 말고 재빨리 메모한다.


"넘어뜨리는 신이 있다면 손잡아 일으켜 주는 신도 있다. 무기력에 자꾸만 빠뜨리는 신이 있다면 다시 기력을 호호 불어주는 신도 있다. 엉키고 설킨 잔디가 있다면 우리에겐 양발의 신, 손흥민이 있다. 뻔한 결정을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재판관들이 있다면 우리에겐 우리가 있다. 어두운 곳에 수괴가 있다면 우리에겐 노벨상과 보편적 가치에 빛나는 고고한 한강이 있다. 쓸 문장 없으면 쓰지 말고 그냥 자라고 유혹하는 신이 있다면 이봐, 그래도 뭐라도 한 줄 써야지라며 독려하는 신도 있다. 허술한 문학소년이 인천에 있다면 어여쁘고 멋진 문학소녀, 소년들도 있다. 어디에? 여기 라라크루에. 한국말의 악센트와 강세는 그래서 늘 뒷부분에 있다. 책 속의 문장을 끝까지 경청하고 타인의 말도 진중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압축은커녕, 수다만 한 사발이다. 역시 고수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숨은 허덕이고 전두엽은 쥐 나고 버겁지만 그래도 나름의 일필휘지에 밥 먹다 말고 괜히 미소 짓는다. 글쓰기 시작한 지 어느새 사 년 차인데, 눈치채셨듯이 아직도 참 많이도 어설프다. 어설프긴 해도 마무리는 지어야지. 이렇게.


"회복과 긍정, 복원과 희망의 신은 분명히 있다. 그 신이 언제나 오시려나 목 빼고 눈 빠지게 기다릴 필요는 없다. 정말 있으려나 갸우뚱거리며 의심할 필요도 없다. 신은 내 안에 있다. 잠들어 있는 신을 흔들어 깨우면 될 뿐이다. 버려지고 넘어진 나를 다시 일으키는 건 언제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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