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일레븐 (2)

by 김호섭

대학 1학년 때. 어느 여름날,

헤롱은 수중에 딱 3만원 들고, 17박 18일 전국 자전거 일주를 떠났고,

온갖 고생과 각고를 뚫고 호연지기를 가슴 가득 채운 후, 무사히 완주에 성공한다.

수많은 환영 인파들이 헤롱과 일주팀을 개선장군처럼 맞이한다. 그리고는 딱 2~3일 후, 헤롱은 교내 캠퍼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나오다가 교수님 차에 와장창... 교통사고를 당한다.

전국 험난 지로를 꾸역꾸역 다 돌고 사고는 안전한 캠퍼스에서 라니... 방심의 극치다.

사고는 컸고, 의식을 잃은 지 무려 열 시간 만에 극적으로 헤롱은 깨어난다. (부모님... 속 썩여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요즘 김아야가 <상남자 김아야의 상당히 아픈 이야기> 매거진에서 이런저런 아픈 얘기를 하는데 진짜 아픈 얘기는 이거다. 아픈 얘기를 여기서 하느냐...

마당 일레븐과의 술 이야기를 위한 백그라운드 배경화면이니까.


인천 기독병원에 입원한 헤롱은 양쪽 턱 탈골, 얼굴, 팔, 다리 성한 곳이 없었고, 병원 측은 턱을 제자리에 맞추려고 기골이 장대한 의료진 아저씨들 다섯 명이 달라붙어 몸부림치는 헤롱의 빠진 턱을 완력으로 맞추려는 시도를 한다.

두 차례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치아 사이사이를 철사로 뚫어 고정시키는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수술을 받고 헤롱은 병상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죠스냐, 프랑켄슈타인이냐. 아프다. 진짜 아프다.

그 다섯 명의 아저씨들도 축구로 다져진 헤롱의 발버둥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 옆방에서 시름시름 앓았다는 것은 후일담이다. 두 달쯤 되니, 몸의 고통보다 한창나이 새파란 청년 헤롱은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던 차였는데, 친구들이 문병을 왔다. 마당 일레븐이다.


"얘들아. 날 좀 병원에서 탈출시켜라."

인물 좋고 언변 좋은 연대생 태성이 나서자 세상 무서운 간호사 누나들이

"한두 시간 안에 돌아와야 돼~"라며 나긋한 허락을 내린다. 하여간 잘 생기고 볼일이다. 잽싸게 사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호프집에 앉기까지 일분도 안 걸린다. 친구들은 그래도 걱정은 되는지 이슬 대신 호프를 권한다. 철사 고정 치아 사이에 빨대를 꽂고 들이킨다.

아.. 이 열정이여. (하이트진로 뭐하냐. 감사패 준비해라.)

아.. 내 인생 최고의 맥주다.

바로 이어, 헤롱은 기본 안주로 나온 새우깡을 하나 집어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레 입으로 향한다. 들어갈 틈이 없는 새우깡은 벽에 부딪히고 좌절한다. 친구들은 낄낄 깔깔 난리도 아니다. 이런 몸개그는 살다 살다 처음 본다며...


새우깡을 사이다에 타서 믹서로 좀 갈아주랴?

믹서로 간 새우깡의 본질은 사이다냐 새우깡이냐 새우냐?

여기서 믹서는 주체적 행동이냐 타의적 강제냐.

철학도 오고 간다. 세상 웃긴 철학이다. 웃으나 슬프다.




얼마간 더 있다 퇴원을 했다. 철사줄은 그대로지만, 음식 섭취 가능할 정도의 틈은 열였다.

"얘들아. 우리 바다 보러 가자." 얘기 나오고 강원도 양양군 낙산해수욕장 민박집에 앉아있기까지는 채

하루 이틀도 안 걸린다. 술 갈근증이 난 헤롱을 위해 이번에는 한양대생 원덕이 나선다.

경월소주 한 박스 놓인 옆방 청년들과 사바사바 말트고 술자리를 연다. 하여간 키 후리후리 크고 잘 생기고 볼일이다. 이슬의 사촌인 경월소주 사홉들이 스무 병을 한자리에서 원 없이 마셔버리고 원덕과 헤롱은 끙끙 앓는다. 함께한 옆방 청년들은 기절한 지 오래다. 그리고, 2박 3일.

낙산해수욕장 뷰티풀 선셋 비취는 구경도 못하고 돌아온다.

아.. 낙산이여.




노후에 꼭 필요한 것 다섯 가지가 있단다.

건강 / 돈 / 일 / 친구 / 사랑


나의 노후준비는 잘 되어있나 체크해보자.


건강 : 그럭저럭 기초체력은 유지한다. 어릴 적 다진 축구

덕이다.

돈 : 1인 가구 세대주로서 뭐 돈 쓸 일이 거의 없고

생계유지할 정도면 되겠다. 나중에 손자 손녀 생기면

맛난 사탕 사줄 정도 있으면 되겠지. 살아오면서 나름

많이 벌어 봤으니 한도 없다.

남은 건 없지만서도...

일 : 글쓰기라는 즐거운 일이 생겼다. 은퇴 없는 일이다.

친구 : 빨가벗고 뛰어놀던 친구들이 있다. 아무런 가식과

가면도 필요 없는 녀석들. 나이 들어도 착하고

귀엽다. 마당 일레븐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헤롱이

글로벌 술집에서 만난 수많은 글로벌 술꾼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주도권을 잡고 생존할 수 있게 된

그 근저에는, 이 들의 피나는 조력이 있었다.

기초 체력과 기초 주력을 유소년 클럽 시절부터 함께

어깨동무하며 키워 왔으니 말이다.

이제, 이 나이에는 술을 권커니 잣커니 무리하지는

않는다.

이제, 권하는 건 추억이요, 나누는 건 미래다. 헛웃음

폴폴 나지만 나름 심오한 철학과 아재 개그도

열심히 나누리라. 심심할 새가 없으리라.

사랑 : (.....) 어렵다.

여기서 글을 맺는 게 좋겠다.


낙산에 가고 싶다.

마당 일레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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