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당연한 것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최근 중국 경제가 침체 국면을 맞이하고,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중국 이야기인데, 나랑 상관있어?"라며, 생각하다가도 사실 나는 안다.
세계 경제가 국가 간에 직간접 적이든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 한국 경제도 원 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가며, '뉴노멀'을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 IMF와 같은 경제 위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충분히 소비를 해주어야 하는 3,40대들은 주택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고, 폐업하는 가게는 내 눈으로 자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며, 정치는 불안정하다.
이렇게 가다가 국가경제가 쪼그라들지 모를 실정이다.
필리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부강하게 살던 나라가 가난해진 사례는 많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윤택한 환경이 지옥으로 바뀌는 건 어느 나라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역행인생'에서 주인공 즈레이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성실했다. 그래서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식을 기르며 살 수 있었다.
이런 그에게 구조조정이 찾아온다.
그는 회사를 원망하지만, 과열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온정은 차가워질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토바이에 오른 그의 처절 사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날, 사실 전세계에는 엄청난 즈레이들이 지금도 분투하고 있다.
즈레이가 오토바이로 달린 상하이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고작 2시간이다.
또한, 대다수 국민이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북한은 애기봉 스타벅스에서 불과 1.4km 떨어져있다.
1.4km면, 우리집에서 대구 수목원까지 큰 길을 따라 가면 걸리는 거리다.
차로는 2,3분이면 간다. 나의 일상과 누군가의 비참한 현실이 그렇게 멀지 않다는 말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을까.
힘들지 않아도, 힘들어 하는 누군가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은 없을까.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힘든 이를 돕기보다 자기 배부터 채우기 때문에 그런 세상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도 무한경쟁 속에 서로를 도와가는 좋은 이웃 덕분에 세상은 그나마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유토피아는 그저 유토피아일 뿐인 걸까.
나는 그저 더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하든 넘쳐나든 자족할 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행인생'에서의 즈레이의 이야기가 나의 현실에 닥쳐올 때도, 나는 의연할 수 있도록 마음을 더 강하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작은 돈을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싶다.
그래서, 한푼이 아쉬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싶다.
오늘도 수 많은 즈레이들이 끝을 알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갈 때,
나는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님을 인정하며, 살아가야지,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의 고통에 무뎌진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