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슈탈트 심리학을 통해 자신을 알아차리기
심리학자인 나는 '인생은 해석하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에 따라 같은 일을 경험하고도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인간의 행복은 '해석'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해석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해석할 수 있는 틀은 사람마다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엄마뱃속에서 태어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가 처한 환경, 각자가 만난 주양육자와 관계에서 생존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워간다. 이 과정을 통해 해석하는 틀이 만들어진다.
이 틀은 한 개인이 겪은 사건, 경험, 기억에 영향을 받는데,
구체적으로는 주 양육자나 자신에게 중요했던 인물이 해준 어떤 말이
그 사람에게 내사되어 마치 자신이 한 말과 생각이 아님에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사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내사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개인으로 하여금 매 순간 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다양한 욕구에 반응하지 못하게 한 채, 일방적으로 따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사된 것들이 타인의 것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거라고 착각 하며 살게 된다. 즉 내사된 것들의 명령에 따르면서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산다.
대표적인 내사로는 부모의 가치관이나 사회에서 부여된 도덕적 규범을 들 수 있다.
'착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어른에게 순종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튀지 마라', '남을 믿지 마라', '성공해야 한다', '세상은 위험하다'
(책, 정서중심적 치료 P74. 이지영 지음) 중.
내사의 영향은
첫째, 우선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타인의 기대에 따라 살게 만든다.
둘째, 내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느라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욕구와 의지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
셋째, 부모나 사회가 부여한 내사된 생각과 가치관, 기대대로 사느라 피상적이고 판에 박힌 행동을 하며 깊은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기 자신으로 있지 않으니, 타인을 만나도 친밀하거나 진정으로 만난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째, 자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타인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보고 평가할지를 더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다섯째, 그렇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욕구는 좌절되면서 축적된 미해결과제로 인해 내적인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책, 정서중심적 치료 P76. 이지영 지음) 중.
'내적인 힘'은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처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 처한 환경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 등을 포함한다. 자신 안에 이러한 힘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자신의 게슈탈트를 알아차려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여 환경과의 접촉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책, 정서중심적 치료 P101. 이지영 지음) 중.
내가 기억하는 내사된 언어가 있다. 너무나 강렬해서 잊을 수 없다.
현태는 착하제?
그렇다.
나는 착해야 했다.
착해야지만이 살아남고, 착해야지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착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데 집중해야 했고,
착할 수 있다면, 나의 욕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계속 나는 나의 '욕구'를 등한시하며, 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에 집착하며 살았다.
어느새 나는 모순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의 욕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만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나의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나를 위함이 아닌 이러한 일을 극복함으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자 하는데 익숙해졌다.
나는 내 욕구에 솔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내적인 힘'은 점점 약해졌다.
서른여덟의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평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나의 '욕구'에 더 귀를 기울이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렇게까지 살아오느라 애썼다.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를 해코지할 사람은 아니니깐 말이다.
누군가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거나, 싫어해도 괜찮다. 아니, 의도적으로 나를 외면해도 괜찮다.
나는 당신들의 '평가'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들이 당신들의 내사된 언어로 나를 향해 내리는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