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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z eon Dec 31. 2020

ADIOS 2020

이제 2020년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왔다.


취업에 최종 합격하지 못했다면 올해를 정리할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한 채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있었을 것이다.


취업 준비를 시작할 때 나는 데드라인을 설정했다. 데드라인은 고시원 계약 만료일인 21년 2월이었다. 나에게는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없었다. 나는 그저 취업을 하고 싶었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노동이 하고 싶었다. 인간의 삶에서 노동이란 결코 뗄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20대에 내가 쌓은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5,6월에 자격증 2개(재경관리사, FAT_1급)를 취득하면서 학기를 마무리 했다. 오랜 기간 공부로 내게는 직무 관련 실무 경험이 전무했다. 7월은 부가세 신고기간이다. 나는 여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판단으로 부가세 신고와 관련된 단기 구인 공고에 이력서를 30군데 이상 제출했다. 연락은 어디서도 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부가세 신고에 베테랑 경력직들이 널렸다. 나 같은 신입을 단기 아르바이트로 뽑을 이유가 전무했다. 다행히 부가세 신고는 아니지만 세무법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고 병의원을 전문으로 하는 세무법인에서 7-8월 2달간 직무 관련 실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무법인에서의 경험 및 경력기술서는 따로 다루겠다) 참고로 나는 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토익을 공부했고 7월 말에 900점대의 점수로 어학 성적을 새로 갱신했다.


9월의 취업 시장은 황량 그 자체였다.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자소서를 100군데를 넘게 넣게 된다는데 내가 내년 2월까지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100군데는 될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대기업을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지원할 대기업이 없었고 대기업 공채가 설령 올라와도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없었다.


세무법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근무시간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했지만 계약 만료 이후는 오로지 나의 의지만으로 계획적인 시간관리가 필요했다. 나는 일단 10월에 ERP 정보관리사, 11월에 신용분석사 시험을 신청했다. 그리고 나는 너무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고시원에서 살면서 숙면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매일 7시 50분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9시에 도서관에 앉았다. 그리고 도서관 마감 시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오전에는 1차 직무 면접과 자격증 시험을 위해 전공책을 다시 폈다. 전공 공부를 학부 시절 때와 같이 심도 있게 하지는 않았다. 직무 면접에서 나올만하다고 판단되는 키워드를 뽑았고 (ex. 회계순환과정, 환율, 재무제표, 재무비율분석의 한계점 등) 관련 키워드를 설명하는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최종 합격할 때까지 만든 스크립트가 글자 크기 11pt로 15쪽 정도였고 아마 최종 합격하지 못했다면 계속 늘어났을 것이다.


문제는 자소서인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짜임새 있는 글쓰기를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인정했다기보다 늘 알고 있었다. 나는 잡코리아 합격 자소서를 활용했다.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면 합격한 자소서를 읽을 수 있는데 감탄스럽게 잘 쓴 자소서들이 많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합격한 이들의 자소서 틀을 따라 했다. 짜임새 있는 글은 하루 이틀의 훈련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자소서를 베끼지 않았다. 문단의 구성과 짜임새를 활용한다 해도 내가 경험한 사례를 채운다면 새로운 글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는 글짓기 대회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날 뽑아달라는 의도의 글이다. 목표를 정확히 하고 불필요한 요소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피하는 것을 감히 조언하고 싶다.


면접을 준비하고 실제 면접을 본 경험이나 소감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화상면접 또는 비대면 면접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은 비단 지원자만이 아니었다. 기업 또한 이러한 상황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유튜브에 실무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훌륭한 유투버들이 좋은 영상을 많이 올려주고 있고 나는 이에 감사한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늘 금전을 기반으로 돌파하기보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요소들에 먼저 시선을 돌려보는 게 어떤가를 조언하고 싶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인생을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또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때문에 그 시간은 매우 잔인하고 냉정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언젠가 잘 될 것이다 또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라는 말보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스스로에게 냉정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라는 말이 아니다. 현재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직무나 산업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동안 쌓아온 역량이 어느 직무에 적합한지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또는 스스로가 자신 있는 분야가 정해지면 그 분야에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위해 시간을 쓰게 되어있다. 이런 고민을 선행하지 않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힘이 빠져 좌절하고 자포자기하는 친구들을 여럿 보았다. 물론 채용과정 속에서 허들을 넘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들 때문에 끝없이 어려운 시간이 찾아온다 해도 스스로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목표를 설정한다면 몸은 끝없이 움직여진다.


나는 솔직히 운이 좋다는 말을 싫어한다. 내가 수능을 보고 외국어와 수리를 1등급을 받아왔을 때 아버지께서는 내게 운이 좋았다고 평가하셨다. 그때 그 말이 듣기 싫었다. 내가 열심히 해서 1등급을 받은 거지 운은 무슨...이라고 속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9월에 처음 자소서를 넣어서 12월에 최종 합격을 하기까지 나는 각 전형을 합격할 때마다 운이 좋았다,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실력도 없이 운을 논할 수는 없다.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한 부분도 있지만 IMF 때보다 더 힘든 취업 시장에서 바늘구멍 하나하나 통과하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하다. 그대는 좌절하지 말라.


나의 너저분한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방식으로도 올해를 정리하고 작별 인사하고 싶었다.


Good By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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