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스윙은 모든 관절의 분리가 본질이다
옥수동의 어느 비탈길에 위치한 카페에서 강의를 기다리며 패드를 펼쳐 들었다. 강의 장소를 제공해 주신 원장님께서 추천한 카페의 2층은 햇살이 바로 들어와 아늑하다. 휘낭시에가 워낙 유명하다고 소문난 카페라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임에도 강의를 위해 포장 주문을 했다. 커피 메뉴를 훑어보던 중 반가운 원두가 눈에 띈다. 게이샤다. 오랜만이라 더 반갑다. 영하의 날씨에도 얼죽아를 고집하는 나이지만 게이샤만큼은 따뜻한 브루잉을 포기할 수 없다. 역시 입소문이 날 정도로 좋은 카페다. 게이샤는 훌륭하고, 휘낭시에는 맛있어 보인다. 예쁜 포장 상자를 뜯어 하나를 맛보고 싶지만, 함께 나누는 즐거움보다 혼자 하나를 꺼내 베어무는 행위가 더 큰지를 판단하는 나이가 돼버린 것 같다. 역시, 맛있는 건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거다.
게이샤는 원두의 최고봉이다. 게이샤를 이해할 수 있으면 커피의 대부분을 이해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맛있는 게이샤를 마셔보는 경험은 정말이나 중요하다. 영점을 잡는 일이라고나 할까. 맛있는 게이샤에 대한 기준이 생기면 그 이후에 마시는 모든 커피의 위치를 이해하고 내 취향을 알게 된다. 와인이 그렇듯이, 커피 또한 원두의 가격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내 입에 맛있는 취향을 찾으면 된다. 그 영점을 잡는 일은, 무엇보다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는 일이다. 무엇이 맛있는지를 알게 되면, 모든 커피의 경험이 새로워지고 즐거워진다.
골프 스윙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골프 스윙의 영점을 잡을 수 있다면, 이후 접하는 모든 골프 스윙의 원리에 대한 기준점이 생기게 될 거다. 골프 스윙 이론을 이해하고 내 피지컬과 근력, 유연성 등을 고려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 내 골프 스윙은 절반 이상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골프 스윙 이론이 다 옳은 것도 아니며, 내 몸에 맞는 것도 아니다. 골프 스윙의 종류는 골퍼의 수만큼이나 많다. 그래서 골프 스윙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내 골프 스윙에는 정답이 있다. 세계적인 프로 골퍼가 모두 자기만의 특징을 가진 스윙을 하고 있지 않던가. 로리 맥길로이가 아니라면, 로리 맥길로이의 스윙을 고집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골프 스윙의 영점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골프 스윙의 영점은 릴리스와 로테이션에 있다고 생각한다. 골프 클럽의 특성을 이용한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자, 비거리와 방향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움직임이다. 손목을 쓰던 팔을 쓰던 회전력을 쓰던 지면반력을 쓰던 클럽 헤드의 릴리스와 로테이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클럽 헤드의 열리고 닫힘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것은 골프 스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골프 스윙의 영점을 이해하면, 어떤 힘을 쓰던지 재현 가능한 스윙을 할 수 있다.
오늘은 로테이션의 본질을 오른팔의 움직임에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나는 골프 스윙을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하나는 수직 낙하 동작으로 손목을 내린 후 몸이 돌면서 공을 타격하는 메커니즘이고, 다른 하나는 백스윙 탑에서 손이 골프공 방향을 향하면서 손목의 언코킹 동작을 통해 공을 타격하는 메커니즘이다. 나는 후자의 메커니즘으로 스윙을 하고 있고, 그 이론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 건 없다. 골프는 스윙을 평가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공을 홀에 집어넣는 스포츠다. 어떤 스윙을 갖고 있든지 공을 홀에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좋은 스윙이다.
오른손 로테이션의 본질은 바로 다운스윙에서 오른 어깨의 외회전 동작이 유지되는 것에 있다. 임팩트 시까지 오른 어깨가 외회전 되어 있으면, 팔꿈치의 안쪽이 정면을 향하게 된다. 그렇다면 클럽 헤드 페이스는 어떻게 닫히는 걸까? 팔꿈치 아래 전완의 회전으로 이루어진다. 오른팔의 상완과 전완이 분리되는 동작이다. 오른팔의 상완과 전완이 분리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골프 스윙에서 매우 중요하다. 오른팔의 전완과 상완이 분리되지 않고 한꺼번에 - 통으로 - 외회전 되면 다운스윙에서 임팩트에 이르는 동안 오른쪽 어깨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이른바 엎어 치는 스윙이 발생한다. 엎어 치는 스윙도 여러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유도의 업어치기처럼 상체의 힘으로 엎어 치는 동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엎어 치는 스윙이 발생하는 기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왼팔의 로테이션은 어떨까? 어드레스에서 백스윙 탑에 이르는 과정에서 왼팔은 전완과 상완이 함께 내회전 되고, 다운스윙을 거쳐 임팩트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통으로 외회전 된다. 이후 오른팔과 왼팔이 모두 펴진 팔로 스루 시점을 지나면 왼쪽 팔꿈치가 굴곡되면서 외회전 되는데 그때 전완과 상완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그래서 왼팔은 전완과 상완이 함께 내회전과 외회전 되는 것으로 이해해 무방하다. 왼팔의 전완과 상완을 분리하는 스윙 메커니즘도 있는데, 이는 너무나도 특별한 움직임이라 다른 스윙과 함께 사용될 수 없을뿐더러 왼팔의 움직임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진 스윙이므로 왼팔로 스윙을 하겠다는 골퍼가 아니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오른팔의 로테이션이 전완을 상완에서 분리시켜 클럽 헤드를 변화시키는 움직임이라면, 왼팔의 로테이션은 상완이 전완에서 분리되어 움직이는 패턴을 갖는다. 즉 왼팔의 로테이션이 클럽 헤드를 열고 닫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접해보지 못한 골퍼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오른손 로테이션은 클럽 헤드 움직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드로우와 페이드 구질을 결정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직낙하를 통해 샤프트를 지면과 수평하게 내린 후 몸이 돌면서 공을 타격하는 형태의 스윙에서는 오른손 로테이션이 롤링을 하면서 클럽 헤드 페이스를 닫는 역할을 한다. 백스윙 탑에서 클럽을 잡은 손이 공으로 바로 내려오는 스윙에서는 오른손의 힌징을 유지한 채 코킹이 풀리는 힘으로 공을 타격하게 된다. 오른손의 로테이션은 임팩트 이후에 일어나며, 클럽 헤드는 다운스윙에서 닫힌 채 내려와 공을 타격한 다음 유지되기 때문에 페이드 구질을 구사하기에 유리해진다. 로테이션의 형태가 달라짐에 따라 스윙의 형태와 구질이 모두 달라지게 된다. 이 둘은 다른 스윙이며,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므로 두 스윙을 혼동해 연습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오른손의 로테이션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스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스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미지가 깊이 있게 이해되었을 때 오른손의 로테이션을 이해할 수 있고, 골프 스윙의 두 가지 형태와 더불어 내가 하고 싶은 스윙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오른손의 로테이션 또한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으며, 둘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내 골프 스윙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