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golf 장유빈 프로의 그립 레슨
주말 공주 본가에 다녀와서 밀린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아침 수영을 거르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무심코 틀어놓은 유튜브에 ‘그립으로 상체 힘을 빼는 법’이란 제목의 쇼츠가 보이는 거다. 그리고 썸네일은 장유빈 프로? 지난주에 장유빈 프로가 sbs golf 채널에 나와 레슨 한 영상을 모두 보았던 터라 바로 클릭을 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충격적인 내용이 눈앞에 펼쳐졌다.
왼손은 약지와 소지,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에 힘을 주라는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
결론만 말하자면, 너무너무 행복했다. 전도유망한 프로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레슨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의 레슨을 한 것이다. 그것도 올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투어 프로가 말이다.
수많은 프로가 그립에 대한 레슨을 하지만, 그립에 대한 내용은 거의 같았다. 어느 손가락에 힘을 주는지, 그립의 모양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 거의 교과서적으로 똑같다. 다른 이야기를 한 프로가 손에 꼽을 정도다. 두세 명 정도의 프로만 그립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전했다. 그마저도 완전히 다른 내용을 이야기한 프로는 한 명뿐이었다. 바로, 최경주 프로다. 최경주 프로의 그립 영상을 찾아보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의 그립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그립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적용하기가 어렵다. 그 그립에 적용하면 돌아올 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경주 프로의 그립은 페이드샷을 극대화하는 그립이다. 드로우를 치고 싶은 골퍼가 최경주 프로의 그립을 배우면 그야말로 사달이 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테니까.
로리 맥길로이의 걸레 짜는 모양의 그립이 그나마 다른 형태의 그립이었는데, 그것도 마찰력에 대한 이야기일 뿐 장유빈 프로가 이야기한 그립의 그것보다는 훨씬 기존 그립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립의 기본이 마찰력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면 로리 맥길로이의 그립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알 수 있다. 로리 맥길로이의 그립을 따라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상완과 전완을 분리해서 그립을 잡는 것이다. 걸레를 짜듯이 그립을 쥐어짤 때 어깨까지 내회전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로리 맥길로이의 그립을 연습할 때는 반드시 양쪽 팔꿈치 안쪽이 정면을 보게 하는 상태에서 전완을 비틀어 그립을 잡아야 한다. 팔꿈치의 안쪽이 서로 마주 보거나 어깨가 내회전 되면서 안쪽으로 말리면 안 된다. 걸레는 전완의 내회전만으로 짜는 것이다. 상완과 전완을 분리하는 감이 없는 골퍼라면 섣불리 로리 맥길로이의 그립을 따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양쪽 어깨가 모두 내회전 되면 무엇보다 그립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체에 힘이 잔뜩 들어가 힘을 뺄 수가 없다. 또한 백스윙과 팔로 스루에서 양팔이 뒤집어지기 때문에 스윙 궤도가 플랫해지고, 그립의 힘을 뺄 줄 모르는 골퍼라면 스윙 궤도가 극도로 업라이트 해지면서 손목 부상의 위험이 높아진다.
장유빈 프로의 그립이 왜 충격적인지를 설명하려면, 기존 그립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그립은 스트롱 strong이나 뉴트럴 neutral이나 위크 weak에 관계없이 왼손은 중지, 약지, 소지의 세 개 손가락에, 오른손은 중지와 약지의 두 개의 손가락에만 힘을 주고 잡는 그립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프로가 오른손 검지와 엄지에 힘을 주지 말라고 가르친다. 양손 엄지와 검지를 그립에서 떼고 클럽을 휘둘러보라고 가르치는 프로도 있다. 풀스윙을 하거나 공을 치지는 말자. 그립을 놓칠 수 있으니까. 양손 엄지와 검지를 떼고 그립을 잡고 휘둘러보면 그립에서 힘을 뺀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립의 악력은 약할수록 좋고, 손목은 부드러울수록 좋다. 여기에 장유빈 프로 그립의 특이성이 있다.
장유빈 프로가 말하는 그립의 가장 큰 특이점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있다. 대부분의 프로가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지 않는 그립을 가르치는 반면, 장프로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견고하게 잡는 그립을 가르친다. 위에 유튜브 쇼츠를 캡처한 사진을 보다시피 그 이유는 명백하다. 양손 그립의 끝을 견고하게 잡음으로써 클럽과 손의 밀착감을 높이고, 불필요한 상체의 힘을 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앞서 로리 맥길로이의 그립을 설명하면서 양 어깨가 내회전 되면 상체의 힘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그립은 최대한 견고하게 잡아야 한다. 손과 그립이 마치 용접이 된 것처럼 일체화가 되면 몸의 회전을 손실 없이 클럽에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립의 힘은 수동적이어야 한다. 그립은 내가 힘을 주어 꽉 잡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립의 본질은 마찰력이다. 그립은 클럽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만 잡아주면 된다. 그래서 헤드 스피드가 빨라질수록 그립의 힘도 강해지는데, 이는 수동적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내가 그립을 꽉 잡는 것이 아니라, 놓칠 것 같으니까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프로가 이야기하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의 견고함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 난 여기에 그립의 묘미이자 장프로 스윙의 정수가 숨어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바로, 손목의 부드러움이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힘이 들어가면, 손목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없다. 손목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클럽 헤드의 로테이션 또한 어려워진다.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게 됨으로써 손목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장프로의 스윙은 상대적으로 손목을 고정하는 스윙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장유빈 프로는 풀 페이드 스윙을 주로 구사하는데, 이는 손목의 로테이션이 최소화되고 힌지 만으로 클럽 헤드를 닫은 상태에서 몸의 회전력으로 클럽을 강하게 휘두르는 형태의 스윙이다. 손목의 코킹이나 언코킹에서 오는 힘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 또한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손목의 코킹과 언코킹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힘을 사용하지 않고 몸의 회전력만으로도 충분한 비거리를 낼 수 있다는 점과, 손목이 고정됨으로써 방향성이 더욱 일정해진다는 장점을 살린다는 점이다. 손목을 쓰지 않고도 비거리를 낼 수 있다면? 방향성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손목을 고정한 상태에서 몸의 회전력을 최대한 사용해 원하는 비거리를 낼 수 있다면, 손목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큰 근육을 사용함으로써 오는 일관성을 최대화할 수 있다. 큰 근육으로 스윙하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큰 근육이 작은 근육보다 배리에이션이 적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거리뿐만 아니라, 방향성이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비거리보다 방향성이 훨씬 중요할지도 모른다. 똑바로 날아가는 단타자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장타자의 스코어 대결은, 대부분 단타자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유빈 프로의 그립 레슨을 보면서, 스윙 트렌드가 바뀌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아마 훨씬 이전부터 트렌드는 변하고 있었으리라. 새로운 이론을 배운 프로들이 이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바람은 늘 즐겁고 설렌다. 내가 공부하고 답을 찾은 스윙을 국내 최고의 프로들이 이야기해 주니 더욱 그렇다. 그냥 신나는 아마추어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