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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공이 맞지 않는 그런 날에는

무슨 짓을 해도 공이 안 맞는 날, 그리고 1번 홀 티샷

by 골프치는 한의사

아무 이유 없이 공이 안 맞을 때가 있다. 공이 잘 맞는 날도 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골프가 그리 맘먹은 대로 되는 운동이었던가. 그래도 꾸준히 연습하고 구력이 쌓이다 보면 뭔가 되는 날이 있기 마련인데, 유난히 공이 안 맞는 날이 있다. 지난주 일요일이 그랬다.


지난 주말은 무척이나 바빴다. 부모님이 다녀가셨고, 교회 일이 많았다. 주중에도 한의원 진료로 바빠서 연습장을 한 번 밖에 못 갔고, 4월부터는 USGTF 예선 일정도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연습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더군다나 드라이버도 신상으로 교체하지 않았는가. 드라이버 교체하는 김에 평소 눈여겨보았던 샤프트까지 중고로 구매해서 교체해 두었다. 스윙웨이트도 맞추고 손에 익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얼른 샤프트 바꿔 끼워서 연습장에서 연습해 보고 무게추도 바꿔 끼우고 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하다. 교회 일을 끝내놓고 저녁을 먹고선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주중에 따뜻했던 날씨가 조금 추워진 탓인지 인도어 연습장 1층에 자리가 있었다. 작년 11월에 새로 생긴 연습장인데 1층에 굴곡이 적어 숏게임 연습하기에 좋다. 타석을 결제하고 몸을 풀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재생시킨다. 늘 하던 대로 57도 웨지를 들고 타석에 섰다. 웬걸. 공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웨지부터 드라이버까지 모든 클럽이 다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웨지도 생크가 난다. 환장할 노릇이다. 어프로치도 정타가 맞지 않으니, 연습할 맛이 안 나는 건 고사하고 당황스럽고 식은땀이 난다. 평소 같은 생크면 사이드 스핀이 먹는데 이건 아예 직선으로 튀어나간다. 7번, 5번, 9번 아이언을 번갈아 꺼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잠깐 앉아서 숨을 돌리는데, 뒷타석 아저씨의 눈빛이 가슴에 꽂힌다. 아뇨 아저씨, 오늘만 그런 거라고요.


잠시 숨을 고르고 플레이리스트를 바꾸고, 유틸리티를 들고 다시 타석에 섰다. 이럴 때는 유틸리티가 최고다. 드라이버 슬라이스가 고쳐지지 않아 2년 동안 백에서 드라이버를 빼고 라운드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내 티샷 메이트는 5번 우드와 20도 유틸리티였다. 얼마나 지겹게 휘둘러댔겠는가. 나와 2년을 함께한 티샷 메이트는 이런 날도 날 배신하지 않는다.


다행히 유틸리티샷이 쭉 뻗어 나가 준다. 거리는 180m 정도. 평소보다 확실히 많이 나가진 않는다. 바실리우스 70s는 너무 강하긴 하다. 그래도 에폰 헤드의 타감을 포기할 수 없어 리샤프팅 없이 그대로 쓰고 있다. 잘 맞는 날은 또 버겁지 않게 잘 나가주니까. 공이 안 맞는 날은 가장 익숙하고 자신 있는 클럽을 들고 연습을 하거나 라운드를 한다. 나에겐 20도 유틸과 9번 아이언, 그리고 51도 웨지가 그런 클럽이다. 퍼터는 생크가 안 나니까. 다행히도 퍼터는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 고마운 클럽이다.


30분 정도 미친 듯이 휘두르고 나니 다른 클럽도 조금씩 맞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잠깐 정신줄을 놓고 방심하면 여지없이 다시 생크다. 미쳐버릴 것만 같다. 몸에 열이 나고 화도 나고. 두 시간은 여유 있게 연습하고 가려고 했는데 한 시간도 버거울 지경이다. 집에 가고 싶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공이 안 맞는 날. 물론 이유는 있겠지. 내가 잘 모를 뿐.


공이 안 맞는 날은 어떻게 해야 할까? 환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가끔 받게 된다. 특히 구력이 2년 미만인 골퍼들은 두 가지 고민이 많은가 보다. 하나는 모든 클럽이 정타가 안나는 날, 그리고 하나는 1번 홀 티샷.


그런 날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해 두는 거다. 처음 경험한 상황이라면 해답은 없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날은 망한 거다 어쩔 수 없다. 만약에 두 번째라면, 그리고 운이 좋아 내 글을 읽고 첫 번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해 보라. 관찰할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구질, 그리고 내 몸 상태.


공이 안 맞는 날, 난 모든 클럽이 생크가 난다. 오른쪽 45도로 일직선으로 낮게 뻗어나간다. 숏아이언도 웨지도 심지어 어프로치도. 그리고 나 자신을 관찰한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몸이 많이 피곤한 날이다. 운전을 많이 했거나, 전 날이나 당일 일정이 많아 바빴거나, 감기 기운이 있어 몸이 무겁거나, 최근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거나. 몸이 돌지 않으면 팔이 몸에 맞춰서 나오지 않는 현상이 발생해 클럽 헤드가 다 열려서 내려오는 통에 생크가 나는 것이다.


문제점을 파악했다면 해답은 쉽다. 나는 의도적으로 손목을 고정하고 몸통 스윙을 한다. 몸을 많이 돌려서 헤드 페이스를 닫는다. 거리는 줄지만 일단 공이 떠서 간다. 그리고 과감하게 긴 클럽을 버린다. 이런 날 나에게 가장 긴 클럽은 20도 유틸리티다. 드라이버와 5번 우드는 커버를 씌워버린다. 4번과 5번 아이언도 버리고 6번이나 7번부터 친다. 거리는 안 나지만 세컨드샷 생크나서 4타로 그린에 올리느니 거리가 짧아도 공이 떠서 가는 게 보기 플레이를 하기에 유리하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10m 어프로치도 몸이 안 돌면 여지없이 오른쪽으로 간다. 그런 날은 마치 녹슨 나사를 억지로 돌리듯이 삐걱거리는 온몸을 비틀어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플레이가 끝나면 사우나에 간다. 눈을 감고 오늘 플레이를 잊어버릴 때까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다.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술이라도 한 잔.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소뇌가 이 스윙을 기억하기 전에.


1번 홀 티샷도 같다. 긴장을 풀고 80% 스윙을 하는 건 경험이 많은 중상급자 골퍼나 프로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는 그냥 1번 홀부터 냅다 후려야 한다. 1번 홀 티샷이 유난히 안되고 어렵다면, 또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해 보라. 1번 홀 티샷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내 몸 상태는 어떤지 말이다. 나는 페이드 구질을 갖고 있는 골퍼이고, 평생을 슬라이스와 싸우는 골퍼다. 그런데 1번 홀은 그렇게 훅이 난다. 슬라이스가 나는 걸 알고 있으니 손목을 털어서 쳐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1번 홀은 무조건 슬라이스를 친다 생각하고 왼쪽을 과하게 에임 하거나, 드라이버를 치지 않는다. 나에겐 20도 유틸이 있으니까. 긴장이 풀리고 몸에 열이 날 때 즈음에 드라이버를 꺼내도 늦지 않다. 어차피 장타자도 아닌걸. 세컨드 조금 길게 잡는다고 크게 무리 없으니 말이다. 난 4번 아이언을 부담 없이 치는 골퍼니까.


안 맞는 날은 안치는 게 맞다. 타석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잊어버릴 일이다. 하지만 라운드라면, 불쌍한 동반자를 위해서라도 18홀 플레이는 어떻게든 마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어떤 구질이 나오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라.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을 한 번 체크해 보라. 그럼 답이 나올 것이다. 온갖 보상 동작으로 점철된 몸이라도, 익숙한 스윙을 몸이 잊어버릴 리 없다. 운이 좋으면 빠르게 정상을 되찾고 스코어를 내는 것이고, 18홀까지 그분의 가호가 없다면 뜨끈한 사우나를 기대하며 어떻게든 버텨보는 것이다. 그것 또한 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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