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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천개 Apr 03. 2020

"인덕션이 해냈다"

메시지가 마음을 움직인다고?

요새는 사무실에 갈 때 전철을 주로 타고 다닙니다. 예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전철 이용객 때문에도 그렇지만 운동량이 너무 부족해서 일부러 걷기 위함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철에 탄 1시간은 이상하게 집에서는 읽기 귀찮았던 책이 술술 잘 읽힙니다. 전철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향하여 걷는 10분 역시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잡생각들을 정리하는 멋진 산책이 됩니다. 고민이 많은 분이라면 운전 말고 전철+산책 추천드립니다.   


어쨌거나 신분당선 광교역에 내려서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핸드폰 매장에서 내놓은 듯한 광고물 하나가 눈에 띄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덕션이 해냈다"라는 메시지가 산책하는 제 발길을 멈춰 세웠습니다. 이 문구를 본 저는 왠지 남몰래 한 쌍욕이 다른 사람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실 텐데요. 얼마 전 새로 출시된 아이폰 11의 뒷면 카메라 모양새가 주방 조리기구인 인덕션을 닮았다고 사람들이 '인덕션 에디션'이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해댄 적이 있었습니다. 새로 출시되는 아이폰에 관심이 많았던 저 역시도 아이폰 11의 카메라 디자인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이번 디자인은 정말 인덕션 닮아서 더럽게 못생겼네. 아이폰도 잡스 없으니 맛이 갈 데로 갔구나. 초심을 잃었어. 5년 넘게 아이폰 써왔지만 이번에는 갤럭시 S20으로 갈아타야겠다"라고 마음속으로 흉을 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뒷담말을 해댄 '인덕션'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거리 한복판에 있는 것을 보고 꼭 제가 욕한 것을 들킨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생긴 건 저렇지만 성능은 압도적이야 라는 느낌을 줍니다. 제 마음에 진동이 옵니다. 부르르~~


제 마음을 움직였으니 이 메시지는 충분히 효과를 발휘한 셈입니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 잡는 이런 메시지를 만들어낸 사람은 분명 포지셔닝의 달인일 겁니다. 명문장, 명필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 내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훌륭한 메시지가 됩니다. 공감을 샀으니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이제 구매로도 이어질 겁니다. 


그런데 아이폰 11 인덕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 닮긴 닮았고 유쾌한 패러디들도 등장했기에 잠시 소개드립니다.  


-아이폰 11 실제 뒷모습(애플 제공)


-아이폰 11 인덕션 패러디 사진(구글-파이낸셜 뉴스 제공)

-정말 인덕션이다..


-면도기 패러디(구글-파이낸셜 뉴스 제공)



-전설의 아놀드 형님까지 아이폰 카메라 패러디에 등장!





-헐... 내한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 형님에게 패러디 케이스를 실제로 주다니...




이처럼 아이폰 11 "인덕션" 에디션은 카메라 디자인 덕에 상당한 이슈가 만들어졌습니다. 앞서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아이폰 11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인덕션이라는 키워드도 함께 등장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하는 그 단어=사람들의 궁금증이니까요. 그래서 검색해봤는데 12위 권 안에는 없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월간 검색량은 소비자의 니즈(궁금증,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한 키워드의 횟수)를 나타내고 발행량은 경쟁자의 숫자를 말해줍니다. PC 기준 1페이지의 글이 10개인데 각 키워드별 경쟁자가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 이상이니 특별한 노하우가 없는 한 상위 노출은 거의 불가능하겠네요. 


위 순위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이폰 인덕션'이라는 키워드의 월간 검색량(소비자 니즈 혹은 궁금한 정도)은 4200회 정도였습니다. 적지 않은 숫자이고 발행량(경쟁자)도 별로 없어서 온라인으로 글을 쓰시는 분은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써서 상위 노출을 노려볼만합니다.  



-SNS에서도 등장하는 아이폰 인덕션, 고양이가 인덕션을 눌러 화재가 발생한 사건도...






**키워드가 나온 김에 TMI-키워드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A급 키워드 소개 "아이폰 11 야간모드"


-소비자 니즈는 11830인데 발행량(경쟁자)은 1166

-키워드별 경쟁자의 수준이 일정하진 않지만 대개 이 정도 수치는 이미지 개수와 글자 개수만으로 상위 노출이 가능한 수준이니 참고.



말이 옆길로 샜는데요. 앞서 언급한 대로 "인덕션이 해냈다"처럼 메시지가 짧으면서 상대방(독자, 시청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충분합니다. 굳이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검색량과는 무관하게 아이폰 11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인덕션"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인덕션이 해냈다"라는 문구는 더할 나위 없는 상대방 입장에서의 메시지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는 밤도 셀 기세지만, 자신이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는 1~2분 만에도 따분해합니다. 그럼 상대방의 이야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직접 길거리로 나가서 묻는 것은 너무 촌스럽고 가장 빠른 방법은 온라인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관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분이라면 부동산 카페 가입하고 게시글의 댓글만 모아도 30분에 1천 개는 수집할 수 있습니다. (우측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엑셀이나 메모장에 붙여 넣으면 쉽습니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분들 하면 보통 2가지가 메인이지요. 아파트인데 서울에 있느냐, 역세권 아파트냐가 그 2가지입니다. 돈이 왕창 있으면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아파트 사면 됩니다. 모든 조건과 가치가 가격에 녹아있으니까요. 돈이 없으니 투자 대비 이득이 높은 부동산을 찾게 되고 그렇게 전략과 공부가 시작됩니다. 


이하 부동산에서 많이 쓰는 표현은 예타, 도보 몇 분 거리, 슬세권(슬리퍼 신고 다닐 수 있는), 숲세권 등 입지 관련 용어들과 "용인 성복동 어떤가요?" "지금 주공 5단지 들어가도 되나요?" 등 메인 입지는 아니면서 오를지 말지 향후 전망 묻는 질문(잘 안 오를 거 알지만 어떻게든....), 리모델링 추진 단지나 상가 근접, 지하주차장 연결, 분양가 등등이 자주 돌아다니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입니다. (이 용어들은 이 글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지금 10분 정도 부동산 카페 가입하고 거기서 찾아온 내용들) 


이처럼 카페는 상대방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데 최고의 커뮤니티이자 도구입니다. 


추가로 사람들의 뇌리에 딱 박히는 메시지는 몇 가지 공식이 있긴 합니다. 

1. 이미 결정은 했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원하는 사람에게 답정너 메시지 유형

2. 개인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메시지 유형

3. 개인의 손실회피 욕구를 자극하는 메시지 유형



위 사례 중 1번의 예를 잠깐 보고 마치겠습니다. 이 유형에서는 듣고 싶은 말만 해주면 됩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은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차는 깡으로 사는 겁니다! 지르세요!" 

보배 x림 같은 사내들 땀내 나는 자동차 커뮤니티에 가면 부자도 많지만 신규 진입한 젊은 예비 카푸어들도 정보를 찾기 위해 속속 진입합니다. 이들을 위해 먼저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낸 아재 형님들은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수입차 사는데(그것도 중고 2010년식) 연비 물어볼 거면, 보험료 얼마나 내냐고 물어볼 거면, 유지비 얼마나 내냐고 물어볼 거면 뚜벅이로 저금이나 하라고 "진짜 맞는 말"을 해줍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왜 그러냐 차 사는데 뭔 돈이냐 차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거야"라며 젊을 때 아니면 언제 지르냐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회원도 많습니다. 


이때 자동차 딜러라면? BMW 5 시리즈 중고를 구매하고 싶은 월급 200만 원 20대  예비 카푸어에게 (어차피 BMW를 사기로 내심의 의사를 결정한) "차는 깡으로 사는 겁니다! 지르세요!"라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핵 공감과 좋아요+1을 얻게 됩니다.  영업계의 영원한 금언 "이 사람은 너 아니어도 다른 사람한테서 산다"  무조건 팔고 봐야 합니다. 영업에서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입니다.


-정치에서 좌, 우 / 어후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갑니다. 좌우 진영에서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면 됩니다. TV나 SNS를 통해 돌직구를 날리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혹은 쌍욕)를 내대신 해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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