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리아 힐
크리스마스여도 귀대 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12시, 정확히는 00시에 풀리는 것이라면, 외출을 나온 의경은 20시까지는 본래 신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본태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우리 일행은 그날의 마지막 여행지를 급하게 찾아보았다.
마침 가까운 거리에 카멜리아 힐이 있었다. 카멜리아 힐은 국내에서 가장 큰 동백 수목원으로, 무려 500종류나 되는 다양한 품종의 동백꽃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제주의 12월은 ‘동백꽃 필 무렵’이기에, 카멜리아 힐의 동백이 한창 예쁠 때이겠구나 싶어 서둘러 친구들과 한 겨울의 꽃놀이를 떠났다.
크리스마스라서 그런 것인지, 제주의 모든 관광객들이 카멜리아힐로 몰려든 것만 같았다. 주차장을 찾아 한창을 돌아다닌 후 겨우 입장을 하니,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복장을 입은 거대한 돌하르방이 우리를 반겨준다.
아름답게 피어난 동백을 볼 생각에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새로 걸어갔는데, 어라, 생각보다 꽃이 많이 피어있지는 않았다. 아직 꽃 필 시기가 아닌가, 하고 설명을 들여다보니 우리가 처음 본 것은 주로 3~4월에 피는 유럽동백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동백꽃들이 피어난 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기동백 정원에 들어선 순간, 온 사방은 동백꽃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특히 이곳은 거울이 길게 늘어서 있어 동백꽃과 사람들을 비추어주는데, 그래서인지 동백꽃이 무한히 확장되어 피어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듯해 발걸음을 서두르니, 후박나무가 늘어선 산책로에는 꼬마전구들이 켜지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산책로의 끝에는 ‘이달의 동백꽃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었다. 길을 따라가 보니 온실 뒤편으로 동백꽃들이 어느 곳보다도 빽빽하게 만개해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동백꽃 덕분인지 사진도 아주 예쁘게 찍혔고, 우리 셋 모두 이날 찍은 사진을 겨울 내내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었다. 모든 꽃들이 져버린 한 겨울에, 그 틈새시장 속에서 피어난 동백은 여름의 여느 꽃보다도 확실한 존재감을 돋보이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내가 근무하는 129의경대의 화단에도 동백꽃이 피어났다. 위경소까지 출근하는 20m 길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동백꽃은 단조로운 군대의 일상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붉은 꽃이 하나둘 피더니 언젠가 부터는 분홍색, 하얀색 꽃들도 꽃 봉우리를 활짝 피었고, 그 동백꽃들이 꽃송이를 떨어트릴 즈음엔 어느새 봄이 만연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