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평화기념관
거대한 벽면에는 시들이 적혀 있다. 시인들, 학생들, 도민들이 써 내려간 시들은 역사의 아픔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나 죄 어수다’라는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이 역사는 죄 없는 자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었다.
시의 벽을 지나 눈앞에는 푸른빛 건물 하나가 들어선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이다. 이곳에서는 4·3의 역사를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사실에 기반한 역사자료와 당시의 기억을 표현한 아트워크 등 다양한 전시구성으로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하고, 평화의 가치를 알리며, 희생자의 넋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다. 무엇보다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되어 왔던 민중,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관이기도 하다.
전시관은 ‘역사의 동굴’을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4·3 사건이 일어나는 기간 동안 도민들은 학살을 피해 중산간 지역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어둡고 답답한 공간 속에서 불안감과 공포심이 그들을 옥죄었을 것이다. 터널을 지나면 하얀 비석이, 아무런 글씨도 없이 누워있다. 4·3 사건이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 못하였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비문이 쓰이고 비석이 세워지는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아득히 높은 천장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2관, ‘흔들리는 섬’에서는 일제 말기에서부터 인민위원회의 자치 시기, 미군정의 통치기의 역사를 보여준다. 해방이라는 희망감과 가능성, 동시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의 시기. 이 긴장감은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후자의 우세로 기울게 된다. 3·1절 발포 사건 이후, 미군정은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여 탄압을 가세하였고, 이념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어 4월 3일 남로당의 무장봉기로 이어진다.
3·1절 발포 사건의 충격은 붉은 벽면으로 표현되었다. 이 사건으로 제주에는 ‘빨갱이’라는 누명이 씌워졌고, 동시에 제주의 역사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공포감과 충격을 주는 붉은빛인 것이다. 이전까지 평범하던 전시관의 색채는 발포사건과 탄압, 무장봉기의 역사를 지나며 점점 더 어둡게 표현된다.
3관, ‘바람 타는 섬’에서는 무장봉기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토벌대와 무장대간 합의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갔다. 타협을 통해 더 이상의 희생을 멈출 수 있을 것만 같던 바로 그때, 오라리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우익청년들이 저지른 방화는, 미군정과 경찰에 의해 폭도들이 한 행위로 날조되었다. 당시 한반도는 5·10 총선거와 단선 반대 운동 등으로 인해 혼란 속에 있었고, 제주는 그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가는 중이었다. 산으로 올라간 제주도민들의 모습을 담은 강요배 화백의 그림은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평화를 담고 있었지만, 그림의 감상자는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어져 나오는 초토화 작전은 그 불안감을 좌절로 끌고 간다.
4관의 제목은 ‘불타는 섬’이다. 제주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에 초토화 작전이 시행되었다. 이 지역의 마을은 모두 불에 타고, 주민들은 시간 내에 해안가로 내려와야 했다.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무차별로 학살되었다. ‘죽음의 섬’ 전시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얼마나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는지가 표현되어 있다. 마을은 분열되었고, 가족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국가권력과 무장대 간 이념갈등과 다툼 사이에서 무고한 제주도민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토벌대를 믿고 바다로 가면, ‘폭도들과 상종한 것이 아니냐’며 총을 맞았고, 그것을 피해 산에 머무르면 무장대가 집을 털고 찔러 죽였다. 죽음이 필연이 된 세상, 그것이 4·3 당시의 제주였다.
다랑쉬 특별전시관에는 도민들이 숨어 들어갔던 동굴의 현장이 재현되어 있었다. 이렇게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들어가면, 토벌대는 연기를 피워 동굴 안 사람들을 질식사시켰다. 어디서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장대 세력은 점점 와해되었고, 이내 그 수장이 사살되며 사실상 소멸되었다. 그러나 무장대의 붕괴 이후에도 검속과 탄압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한국전쟁이 탄압의 불을 더욱 타오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갔고, 산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나 빨갱이 아니요’를 증명해야 했다. 그 증명은 다시 갈등과 싸움을 수반하였으니, ‘빨갱이가 아님에도’ 맞은 사람들과 ‘빨갱이가 아니기 위해’ 총을 쏘아야 한 사람들의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행방불명된 사람이 3천 명이 넘어갔다. 스크린에서는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끝없이 나열되고 있었다.
이름들을 지나, 5관 ‘평화의 섬’에 이르게 된다. 갑자기 밝은 빛과 흰색 벽이 들어서며 이전 전시관들과는 대조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마치 천국을 표현한 것 같다. 허나 그 천국의 건설은 진행형이기에, 여전히 쑤시는 아픔과 혹시 모를 긴장감, 어딘지 모르게 경직된 태도 역시 수반하고 있다. 빛의 세계는, 아직까지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힌 연좌제, 난리를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제주인들, 총알의 흔적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 이들의 이야기는 4·3이 그 이후의 수 십 년을 괴롭혔음을, 그래서 고질병이 되어버렸음을 보여준다.
허나 변화는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그전까지 쉬쉬해오던 역사를 세상에 드러내었고, 2000년 4·3 특별법 제정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임기에 이르러 국가의 사과도 이루어졌다. 여전히 진상규명이 우직하게 진행되고 있고, 4·3은 점차 부정할 수 없는 역사로서 공고해져 가고 있다.
전시된 비디오 아트에는 현기영 소설가의 말이 기록되었다. ‘끊임없이 4·3을 재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재기억이란 지워졌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 대를 이어 미체험 세대가 그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6관, 에필로그에선 갈등과 아픔의 역사를 넘어 평화와 인권의 상징이 되어가는 4·3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명령에 따라 총을 쏠 수밖에 없던 이들 역시 희생자로 보는 상생의 가치, 평화와 인권을 기리는 4·3평화상 제정 등, 분열과 공포로 한없이 돌아가던 방향키는 시민들에 의해 화해와 인류애의 방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마지막 출구통로에는 희생자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전시관을 빠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