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외출 : 봄을 칠한 길 위에서

가시리 유채꽃 축제

by 김형우

봄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푸르지는 않던 길을 지나, 녹산로에 들어서니 한 순간에 봄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유채꽃들이 노란빛을 내며 반겨주더니, 점차 화사한 벚꽃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드문드문 초록 싹이 나기 시작한 벚꽃은 벌써 그 끝을 향해간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더 아름다워 보이고, 아직 만개하지 않은 유채꽃들은 앞으로도 봄일 것임을 암시하며 또 다른 기대감을 안겨준다.


유채꽃 축제 기간이라 녹산로 도로에는 오고 가는 차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멀찍이 차를 세워두고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조랑말박물관 일대까지 걸어가야 했다. 도로 양 옆을 가득 채운 벚꽃과 유채꽃의 조합은 가는 길에 몇 번이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분주히 오가는 차들 때문에 아름다운 봄의 길을 찍지 못해 아쉬워하던 참에, 차량을 통제한 구간이 나타났다. 차량이 비워진 짙은 먹빛의 아스팔트 길은 도로 양 옆의 봄꽃들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다. 벚꽃축제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 길 위로 사람들이 즐겁게 오가 가며 봄의 활기찬 분위기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녹산로에서는 유채꽃과 벚꽃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도로 옆 편으로 줄지은 푸드트럭들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 보니, 유채꽃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이 계절, 이 동네의 주인공은 자기라는 듯, 유채꽃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산뜻한 노란빛을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꽃 사이사이를 누비며 사진을 찍고, 꽃내음을 맡고, 추억을 그려내고 있었다. 유채꽃 밭에는 커다란 풍력발전소들이 하나의 조형물이 되어주며 단조로울 뻔했던 유채꽃밭 풍경을 치장해주었다. 네덜란드에 풍차와 튤립이 있다면, 이곳에는 풍력발전소와 유채꽃이 한 짝을 이루고 있었다.

노란 유채꽃은 한없이 펼쳐져 봄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조랑말 방목지로 유명한 마을인지라, 축제장 한편에 조랑말 박물관과 승마 체험장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조랑말 박물관은 유채꽃 축제 기간에는 운영되지 않았지만, 잠시 용도를 바꾸어 아이들의 그림 전시관인 동시에 봄나들이 손님들을 위한 카페가 되어주었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승마장에는 왜인지 말이 보이지 않았는데, 안내판을 보니 다른 장소에서 승마체험이 진행 중이었다. 화살표를 따라가 보니, 작은 말들이 모여 봄볕의 여유를 느끼고 있었고, 그중 몇 마리는 관람객들을 태우고 유채꽃 밭을 누비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만큼 말을 한번 타보고 싶어, 체험비를 내고 승마체험을 하기로 하였다. 말에 오르니 시야가 훌쩍 높아졌다. 말은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잘 걸어가 주었다. 처음엔 말의 걸음걸이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 낯설었지만, 이내 그것은 리듬감 있는 진자운동이 되어 왠지 모를 흥겨움을 주고 있었다. 높은 위치에서 둘러보는 유채꽃 밭은 내 키 높이에서 볼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유채꽃이 더 넓게, 멀리 보였다.

축제가 열리는 가시리는 조랑말 방목지로 유명하다.

축제장에서 팔고 있는 간식을 사 먹고, 다시 처음 왔던 녹산로 길로 돌아가 보았다. 저녁에 예보된 비 소식이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하듯이 습기 머금은 바람이 점차 불어오기 시작했다. 벚꽃잎은 그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들어올 때와는 다른 운치를 전해주었다. 큰 비를 앞두고 벚꽃비가 우아하게 내리고 있었다. 벚꽃 아래에 있는 유채꽃은 마저 남아서 남은 봄을 꾸미겠다는 듯, 벚꽃잎들을 사뿐히 받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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