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외출 : 수국이 핀 숲길

절물 자연휴양림

by 김형우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은 곳은 바다가 아닌 숲이었다. 절물 자연휴양림에 들어서자 높디높은 삼나무들이 상쾌한 피톤치드를 내뿜고 있었다. 숲 속에는 평상과 벤치들이 놓여 있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정 상 평상에서의 휴식을 음미하지는 못하였지만, 언젠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기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쾌적해 보이는 환경이었다.


쭉쭉 뻗은 삼나무길을 따라가니 나무로 된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깎아 만든 큼직한 곤충 조각들이 광택을 내고 있었다. 바로 옆으로 목공예 전시관이 보이니, 아마 이곳에서 만든 작품이겠거니 싶었다. 전시관에 들어가자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이 보인다. 나무를 깎아 만든 새, 나무 위에 조각하여 그린 그림, 익살스러운 표정의 조각상들까지. 소박하면서도 정성과 실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20190716_133437.jpg 하늘 높이 뻗은 삼나무들이 상쾌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3천 원을 내면 직접 간단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이 가능했다. 작은 나무판 위에 나뭇가지 조각을 붙이고 색깔을 칠하면 나만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앞서 이곳을 거쳐 간 손님들의 작품이 공예실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주 작은 나무판 위에서 다양한 상상력들이 펼쳐져 있었다. 함께 간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기막힌 작품을 만들려 고민해보았지만, 창작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창의력의 부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시관을 나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걷다 보니, 삼나무 풍경은 어느새 곰솔 숲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직선으로 가지런하게 자라나는 삼나무와는 다르게, 곰솔은 좀 더 자유롭게 이리저리로 휘어져 나가며 자라나 있었다.


숲길 중간쯤에 다다르니 작은 사찰이 있었고, 그 주위로 수국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초여름 제주에는 어느 숲이든 수국이 만연해 걸어가는 재미를 더해준다. 수국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흰색부터 자주색, 파란색까지, 그 변화의 폭이 무궁무진하다. 이곳 절물 자연휴양림에서는 선명한 비취색 수국이 만연해 있었다. 맑은 푸른색 빛깔이 은은하게 사찰과 숲을 장식하고 있었다.


오래 걸은 탓인지 갈증이 나려던 참에, 마침 약수터가 보여 주린 목을 추리고자 하였다. 허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는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약수터는 수질검사를 위해 이용이 제한되어 있었다. 약수를 마실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잠시, 약수터 뒤 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숲 속 작은 샘물, 그 주위로 이끼를 두른 바위가 동그랗게 놓여있으니 마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에서 나올법한 신비로운 풍경이 연출된다. 샘물 소리와 시원한 바람, 녹색의 풍경이 어우러지니 약수를 마시지 않아도 갈증이 해소되는 듯 한 느낌이 든다.

20190716_150211.jpg 숲 속 샘터는 소리만으로도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절물 자연휴양림은 그 원래 규모가 넓은 데다 다른 숲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있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몇 시간 동안 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 절물오름을 오르는 절물오름 탐방로, 11km에 달하는 장생의 숲길, 한라생태숲과 연결된 숫모르 편백숲길 등 다양한 코스가 있었지만, 항상 외출 복귀 시간을 생각해야 하는 나로서는 가장 짧은 길인 생이소리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생이소리길도 40분 동안 나름 알차게 숲을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생이소리길에서는 이전 코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활엽수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좁은 길 양 옆으로 숲이 무성히 자라 있었고, 새와 곤충들이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며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짧은 코스였지만 밀림을 탐험하는 듯 한 느낌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20190716_155643.jpg 수국과 삼나무가 탐방객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준다.

생이소리길을 쭉 따라 걸으면 바로 주차장으로도 갈 수 있지만, 이대로 숲을 나오기에는 아쉬워서 다른 길로 빠져 잠시 돌아가기로 하였다. 숲 중앙으로 향하는 이 길에서는 숙박객들을 위한 펜션들을 볼 수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놀이터, 잔디밭 등이 있어 가족이 함께 자연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였다. 이곳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출발지로 돌아가는 직선 코스가 나오는데, 길 옆으로 물이 졸졸 흐르며 탐방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날이 더운 탓인지 새 한 마리가 수로에 앉아 몸을 적시고 있었다. 처음 숲을 들어설 때 만났던 삼나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우리를 배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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