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외출 : 추억 속 놀이터, 축구장

제주월드컵경기장

by 김형우

내 기억 속 첫 축구장은 제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2002월드컵 즈음에,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 높은 스탠드 좌석에 앉아서,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았던 게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그게 몇 년도의 무슨 경기였고 누가 골을 넣었는지는 한참 뒤에 검색을 하고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06년에는 제주유나이티드라는 제주도 최초의 프로스포츠팀이 생겨 제주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축구에 빠지기 시작한 나에게 월드컵 경기장은 내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변변찮은 문화 생활 거리가 없던 제주에서, 프로축구 경기는 나의 흥미를 끄는 거의 유일한 컨텐츠였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게 세상 제일 즐거운 일이던 소년들에게 월드컵 경기장은 최고의 소풍장소나 다름없었다.


사실, 연고이전 후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던 제주 유나이티드는 한동안 제주에서도 ‘축구 못하는 팀’의 대명사였다. 경기도 재미없고, 경기장 위치가 멀기도 해서, 큰 맘 먹고 경기를 보러가서 실망만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10년, 박경훈 감독이 이끈 제주 유나이티드는 공격적인 축구로 리그 2위를 거두며 K리그 돌풍의 팀으로 거듭났다. 그 다음 시즌에도 ‘방울뱀 축구’, ‘감귤타카’ 같은 매력적인 경기스타일을 선보였고, 이 시기 중학생이던 나는 한창 축구 보러가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박경훈 감독 이후 부임한 조성환 감독 하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면서, ‘만년 하위권’ 제주유나이티드는 어느 샌가 K리그 강팀 반열에 올라섰다.


고등학생 이후로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러갈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의경 복무를 위해 제주로 돌아왔을 때 내 목표는 최대한 자주 축구 경기를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의경 부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K리그 단체 관람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였고, 휴가를 나와서도 군인 혜택을 활용해 무료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제주 월드컵 경기장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독특한 디자인의 지붕, 주황색 인테리어, 힘차게 울리는 북소리. 어릴 적의 추억이 반갑게 되살아났다. 오랜만에 왔지만 응원가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곡선형의 독특한 지붕은 제주월드컵경기장 만이 가진 매력이다.

2018 시즌 초까지 준수한 성적을 보이던 제주유나이티드가 내게 간만에 축구 보는 재미를 일으켜 줄때쯤, 어김없이 찾아온 여름 징크스가 발목을 잡았다. 아니, 평소보다 더 지독하게 잡히고 말았다. 15경기 동안 승리가 없었다. 다행히 정규 시즌 막판 힘겹게 진땀 승리를 몇 차례 거머쥔 덕에 상위 스플릿 자리는 지켜냈다.

이듬해인 2019 시즌은, 더욱 암울한 시즌이었다. 시즌 내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군복무 기간 동안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력이 좋지 못한게 무척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경기를 보러 다닌 덕에 한동안 시들었던 나의 팬심에는 다시 불이 붙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2020시즌 준비가 한참이다. 우리동네 축구팀의 승격을 응원해본다.

승격을 위해 팬들은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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