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 해수욕장
불과 몇 달전까지 극한의 추위로 세상이 얼어붙었던 것이 무색하게, 이제는 극악의 더위가 세상을 팔팔 끓이고 있었다. 여름이다. 온난화로 지구가 따뜻해지는 와중에, 여름이다.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나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시간이었다.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 된 것 같지만, 군대에서 내 마음대로 키고 끌 수 있는 에어컨 같은 건 없었다. 온도계는 더 위로 올라가고만 있었다.
극한의 더위 때문에 나의 제주 탐방도 쉬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해 여름 외출 날의 대부분은 날이 너무 더워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나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지만 매번 휴식만 취하며 보내기엔 여름이란 계절은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아무리 덥다지만 여름바다는 한번쯤 가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더해, 기왕 바다에 가는 김에 새로운 체험을 해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서핑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께서는 취미가 서핑이셨다. 수업시간에 가끔씩 해주셨던 서핑 이야기는 내게 신기한 모험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 중에 가장 멋들어진 것처럼 보였고, 대학생이 되면 언젠가 배워봐야겠다는 막연한 낭만감이 자라났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첫 두해의 여름을 흐지부지 보내고, 군대를 가서야 제주 바다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기왕 여름 내내 제주에 있게 되었으니, 올해는 꼭 서핑을 해보고 싶었다. 더위 때문에 다른 곳은 못 돌아다닐지언정, 바다에서 몇 시간 노는 것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서핑 강습을 찾아보았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조건 덕인지 제주에서 서핑 강습을 운영하는 업체는 무척 많았다. 그 중 날짜와 시간, 가격 등을 고려하여 적당한 강습을 선택하였다. 장소는 중문 해수욕장이다. 남동풍이 부는 여름에는 제주 남쪽이 서핑을 즐기기 좋은 지역이 되고, 그 중에서도 중문은 서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이다.
다행히도 외출로 갈 수 있는 낮 시간대에 물때가 맞아 예정대로 강습이 진행되었다. 날씨도 평소에 비하면 견딜만한 더위였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서핑을 즐기기 좋은 조건이었다.
총 세 시간이었던 강습은 뭍에서 한 시간, 바다에서 두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서핑을 처음 즐기는 사람들이었기에, 아주 기초적인 설명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서핑 보드의 용어, 안전수칙 등을 듣고, 해변에 차례로 놓인 보드를 하나씩 잡고 자세연습을 하였다. 보드 위에 엎드려 균형을 잡고, 팔을 저어 보드를 이동시키는 패들링, 파도를 타기 위해 잽싸게 일어나는 테이크 오프. 육지에서 해도 아직까지 동작은 서툴고 불안정하기에 몇 번의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슬슬 동작들이 자연스러워질 즈음, 이제는 바다로 나가 직접 파도를 타 볼 차례이다. 처음부터 혼자 파도를 잡을 수는 없으니 강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서핑보드에 엎드려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다, 드디어 괜찮은 파도가 하나 밀려온다. 강사분이 타이밍 맞추어 보드를 밀어주면, 배운 대로 열심히 팔을 저어 패들링을 한다. ‘업!’ 소리에 맞춰 테이크 오프를 시도하지만... 역시나 아직은 쉽지가 않다. 첫 시도는 실패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을 거쳐, 다시 한 번 도전해본다. 파도가 오고, 패들링을 하고, 다시 ‘업!’ 잽싸게 보드 위에 올라선다. 이번엔 가라앉지 않았다. 약간의 흔들림 이후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고, 보드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가 파도를 타고 있었다. 파도의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좌우로 흔들리며, 빠르게 해변가로 나아간다. 마지막엔 속도를 잃고 입수.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감각이었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느낌. 여태까지 나를 삼키려고만 했던 바닷물이 나를 들어 올려주고 있었다.
첫 성공을 하고 나니 이후의 테이크오프는 더욱 수월했다. 강사분의 지시에 따라 저절로 몸이 움직였고, 그렇게 몇 번을 더 성공할 수 있었다.
강습의 마지막은 자유 서핑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강사분의 도움 없이 혼자 파도를 탈 차례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나와 보드만 있으니,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새삼 길게 느껴졌다. 파도가 한참 안 오다가, 하나가 오는데 좀 약하고. 그 다음에 또 오는데. 아차, 타이밍을 놓치고. 그렇게 시간이 꽤 흐르고 드디어 마음에 드는 파도가 온다. 패들링을 하고, 테이크 오프... 하지만 타이밍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번엔 실패. 다시 또 마음에 드는 파도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다. 그렇게 파도를 기다리고, 좋은 찬스를 몇 번 더 놓치고, 결국 세 번 정도 혼자 타는데 성공했다.
서핑은 기다림의 스포츠였고, 몇 안되는 기회를 제대로 잡기 위한 실력이 필요한 스포츠였다. 그리고 그 실력을 갖기 위해선 앞으로 수차례 더 가라앉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세상을 사는 원리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