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돌 목장
1953년, 한 신부가 황무지나 다름없는 섬에 첫 발을 내딛었다. 스물여섯이던 그의 이름은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그는 아무 것도 없던 섬 사람들에게 자립의 희망을 선물해주었다. 이시돌 목장은 바로 그 희망이 시작된 장소이다.
선교사제로 한국에 파견된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는 가난한 제주의 현실을 목격하였고, 제주사람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 시작한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채무 상환의 부담을 줄여주었고, 한림수직사를 설립해 여성에게 일자리 기회를 주었으며, 맨땅에 헤딩하듯 양돈농업을 시작하여 제주의 중요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이시돌 목장을 기반으로 보육시설, 호스피스 시설 등의 나눔 사업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80여세에 이를 때까지 봉사와 사랑의 삶에 자신을 헌신하였다. 지구 반대편의 문화도 종교도 다른 청년이, 오로지 가난한 이를 돕겠다는 순수한 신념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갔다. P.J.맥그린치는 이제 그의 한국 이름인 임피제로 기억되고 있다.
제주가 가장 초라하고 보잘 것 없던 시절, 스스로 일어설 기반을 닦아주고 그 성과를 다시 주민들에게 나누어줌으로서 진정한 자립을 달성시킨 헌신의 역사가 이곳 이시돌 목장 성이시돌 센터에 기록되어 있었다.
성이시돌 센터에서 나오면 순례의 길이 보인다. 한적하게 나있는 산책로에 성경의 이야기들과 그것을 표현한 조각상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기에 조각상들이 가진 모든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사랑과 희생의 가치가 온몸으로 시행되었던 이곳 이시돌 목장의 기독교 상징물들은 허례허식이나 기만이 아닌 진실성과 헌신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굽이굽이 들어가는 순례의 길의 끝에 도달하면, 돌아가는 길을 따라 다시 출발지로 향하게 된다. 순례길을 빠져나갈 때에는 직진으로 곧바로 나갈 수 있게 되어있는데, 중간에 작은 미궁을 발견하게 된다. 이 미궁은 바닥면에 미로를 그려놓은 것인데, 기독교인들은 이 미로를 걸으며 성지순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고 한다. 미궁의 길을 찬찬히 걸어가며 임피제 신부가 겪었을 고민들을 상상해보지만, 그 무게감은 감히 쉽사리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순례의 길 뒤로 쭉 올라가면 큰 호수가 나온다, 역시 호수둘레 한 바퀴를 돌며 성서 이야기를 둘러볼 수 있다. 호수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멀리 금빛을 띤 오름이 보이며 호수와 조화를 이루고,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 만들어진다.
호숫가에서 내려와 큰 길을 따라 걸으면, 본격적으로 목장 시설일 법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송아지 목장이 나온다. 축사에는 젖소 송아지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작은 송아지집이 줄지어져 있어 아기 송아지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자란 어린 송아지들이 축사에 모여 있었다.
선배 송아지들은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사진을 찍는 나를 바라보았다. 송아지들을 더 구경하려 목장을 가로질러 쭉 가볼까 하다가, 맞은편의 아기 송아지들이 경계할 것만 같아 그냥 빙 돌아서 빠져나오기로 한다.
대로의 한편에서 꺾어 들어가니 이시돌 목장의 랜드마크인 테쉬폰이 눈에 들어온다. 테쉬폰은 이라크 지역에서 유래한 특이한 건축양식을 가리키는데, 한국에는 이시돌 목장에서만 볼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테쉬폰은 곡선형의 쇠사슬 형태 구조를 통해 거센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가졌기에, 바람이 거친 제주에 응용하기 적합하였을 것이다.
테쉬폰을 넘어 내려가 보니 방목지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말들을 좀 더 가까이서 찍고 싶었으나, 멀리서만 서성이고 있을 뿐이었다. 말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 했나, 한참을 기다리다보니 말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을 뜯으러 사이좋게 다가와 주었다. 말들 뒤로는 오름이 있고, 목초지는 봄을 맞아 슬슬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오름과 풀과 말, 참으로 목가적인 풍경이 만들어졌다.
문득 이 평화로운 풍경이 있기까지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지금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동물들, 이들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이들이 지금 이 목장에 모일 수 있던 것은 누군가가 청춘을 바쳐 이곳을 일구어 놓은 덕분이다. 모두가 황무지라고, 앞으로도 계속 황무지일 것이라고 말하던 땅에서 누군가는 미약한 가능성을 발견해내었다. 그리고 그 미약해 보이는 가능성을 그저 지켜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부어넣었다. 그러자 가능성은 희망으로, 희망은 기적으로, 기적은 현실로 바뀌어나갔다. 그리고 결국 지금의 풍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 목장은, 한 청년의 이타심, 상상력, 집념, 끈기를 모아 만든 연금술의 결과물인 셈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이 지닌 능력의 총체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이 선의와 능력의 총합에 의해 결정된다면, 나는 그 합의 크기를 나는 얼마나 키워나갈 수 있을까.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