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_25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마스크가 다 젖었다.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이별 이상으로 내 삶이 망가진 거 같았다. 나라는 사람이 잘못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늘 혼자 감당하는 성격이다보니 집에 도착해서도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일 없는 척했지만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나가떨어질 거 같은 상태였다. 5년 전, 처음으로 찾아갔던 상담센터에 다시 메일을 보냈다. 대인관계 문제로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고 적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해답을 찾고 싶었다.
메일을 보내고 3일 뒤 연락이 왔다. 어떤 문제 때문에 상담을 받고 싶은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눴고 상담 선생님을 배정해주겠다고 했다. 5년 전에 만났던 선생님과는 다른 분으로 배정될 거라고 전달받았다. 사실 처음엔 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조금 아쉽기도 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것도 살짝 부담이 됐다.
하지만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 건 내 인생에서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만큼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메일을 보내고 약 일주일 뒤, 선생님과 처음으로 상담이 잡혔다. 오랜만에 상담 센터를 찾아가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 살기 위해 찾아온 곳이지만 5년 전 마지막 상담을 끝내곤 혼자서 잘 해내보고 싶었는데 다시 돌아왔다는 게 속상했다.
하지만 힘들 떄 상담을 받으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5년 전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힘들었을 때에도 상담이 아니었으면 난 그 시기를 잘 버티지 못했을 거다. 5년 동안 그래도 잘 버텨온 건 내게 최후의 수단으로 상담이 존재한다는 걸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시 상담을 받는다는 건 끝자락에 몰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담 선생님을 만나 뵐 때 긴장이 됐다. 상담을 새로 받으러 갈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었지만 상담이 잡히고 나면 내 고민이 별 거 아닌 거처럼 느껴진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죽을 거 같아 힘들어하다가도 선생님을 만나려고 하면 내가 너무 사소한 걸로 찾아가는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상담이 그렇듯 내가 힘들어한다면 분명 그건 힘들만한 일인 거고, 내가 느끼는 괴로움을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물론 이때는 나도 그런 믿음이 덜했기 때문에 그냥 떨리는 상태 그대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첫날엔 상담에 대한 기본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시작됐다. 시간 엄수에 관한 내용과 약속 시간에 관한 내용 위주였다. 상담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진행되는데 약속 시간에 늦더라도 상담은 1시간 뒤면 종료된다는 것. 지각을 하면 그만큼 상담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 또, 갑작스러운 변경이나 취소는 불가하며 사정이 있다면 미리 이야기해야 된다는 것. 부득이한 경우 외에 상담 시간이 아닌 개인적인 연락은 자제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굳이 언급한 건 이 부분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5년 전 상담을 받았을 땐 이 내용을 안내받았던 기억이 없다. 실제로 이야기를 안 해주신 건 아니었겠지만 잊어버릴 정도로 이 원칙들이 쉽게 어그러졌다. 우울증이 심해진 날에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져서 온갖 핑계를 대며 상담을 취소하거나 변경했다. 선생님은 그 사정을 받아주며 약속을 새로 잡아줬고 나를 다 받아주는 상담사 선생님에게 감정적으로 더 의존해버렸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상담을 끝냈을 때 나는 상담 센터 밖으로 나가는 게 겁이 났다. 혼자 설 준비가 아직 안됐다고 느껴졌는데 쫓겨난 기분이었다. 상담을 받고도 여러 감정적인 문제들을 겪게 된 건 그때 분명 나 혼자서 이겨낼 준비가 되지 않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상담에선 정말이지 엄격할 정도로 이 원칙들이 잘 지켜졌다. 애초에 시간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짚어주시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상담 중간중간에도 시간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조절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막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상담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는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기보다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며 상담을 종료했다. 답장을 바란 연락이 아니어도 개인적인 연락을 하면 상담시간에 이야기하자며 굳이 더 이어나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행동을 모두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분리 덕분에 상담 시간이 아닌 내가 생활하는 시간 속에서 혼자서 해결하는 법을 배워나갈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