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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Aug 07. 2023

디카페인_02

입맛에 딱 맞는 커피

한창 디카페인 라떼에 빠진 적이 있다. 6월에 올린 포스팅이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더 맛있는 커피를 발견했다. 물론 이번에도 디카페인이다. 한동안 카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로 라떼를 해먹었는데 아메리카노 그대로 먹지 않았던 건 단순히 그대로 먹기엔 너무 맛이 없기 때문이었다. 


커피라고 하기에는 커피 향이 느껴지는 조금 께름칙한 맛의 쓴 물 같았다. 내가 직접 뜯어서 녹여낸 커피인데도 한 입 마셔보면 왠지 이걸 마셔서는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굳이 아메리카노를 사서 라떼로 타먹을 필요 있을까 싶어 디카페인 라떼 믹스를 사서 먹어보기도 했다. 확실히 우유를 부을 필요도 없고 달달해서 맛은 있었지만 혈당이 올라가는 느낌이 싫어 이것도 그만 먹게 됐다.


구매해뒀던 커피 믹스들을 다 먹고서 한동안은 그렇게 커피를 찾는 일이 없었다. 정말 너무 먹고 싶은 날엔 일부러 에어컨도 켜지 않은 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청소를 끝내고 집 앞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왔다. 왠지 그렇게 더위로 몰아붙이고 사마시면 보상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믹스로 타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기도 해서 돈쓰는 맛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사마시기도 좀 아까웠고 더위가 더 강해지다보니 일상적으로 물대신 시원하게 마실 만한 음료가 필요했다. 새로운 믹스를 찾아보자며 서치하던 끝에 바로 이번에 소개할 디카페인 커피를 알게 됐다!


이번에 발견한 커피는 디카페인 수프리모이다. 사실 검색하면서 발견하게 된 거지만 나처럼 커피는 좋아하지만 디카페인 커피 맛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커피 취향이라는 것도 결국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오히려 산미 없고 쓰기만 한 디카페인 커피 맛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발견한 포스팅에서는 나처럼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인을 줄이려고 하는 사람이 커피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처음엔 다른 커피의 후기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거였는데 그 내용에서 자신이 마셔본 디카페인 믹스 중에서 제일 나았던 건 수프리모였다고 말하는 데에서 관심이 생겼다.


처음부터 대용량으로 구매하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20개짜리를 주문해놓고는 기다렸다. 마침 주말이 되고 커피가 도착해 아메리카노 그대로 마셔보는데 이건 정말 카페에서 사마시는 것만큼, 아니 그동안 마셔본 몇 군데 카페보다도 더 맛있었다. 디카페인 커피이지만 산미가 느껴졌고 커피가 지나치게 쓴 맛만 강하지도 않아서 다른 주전부리와 곁들이지 않고 그냥 마셔도 좋았다.


어쩌다보니 처음 먹게 된 날 아메리카노로도 먹고 라떼로도 타먹느라 6포를 벌써 사용해버렸는데 아마 추가적으로 구매할 때는 원두만 담겨있는 파우치 형태로 주문할 것 같다. 뭐든 대용량으로 두둑하게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특정한 물건에 푹 빠져서 취향에 딱 맞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던 적이 없다. 굳이 꼽아내자면 영화나 책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사실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 자체를 구체화하는 방향이다보니 정말로 마음에 꼭 드는 무언가를 더 알아내려는 노력은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면서 새삼 나에 대해서 새로운 점들을 알게 되는 게 많다. 디카페인 커피에 관한 것도 그중 하나이다. 카페인도 못마시면서 커피에 대한 세세한 취향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스스로 애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막상 입맛에 딱 맞는 커피를 발견하고 나면 왠지 나라는 사람이 그만큼 딱 짜맞춰진 기분이 들어 만족스럽다.


이십 대 때는 좋고 싫고의 개념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누군가 하고는 생기지도 않은 접점이 사라질까봐 미리 겁을 먹은 적이 많았다. 개인적인 취향에 옳고 그름이 없는데도 괜히 나와 맞는 사람이 꼭 정답 같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보면 틀린 사람 같아서 벽을 치게 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판단들은 애초에 내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닌 애매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나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다면 그 어떤 취향이 내게 묻어오든 겁을 먹을 것도 없지 않았을까. 아직 스스로를 깨닫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나를 물들일까 겁을 먹었던 것이다.


새삼 또 이렇게 디카페인 커피에 관한 고찰을 써내려가다가 취향에 대한 고찰로 마무리하는 게 의식의 흐름 같기는 하지만 이 역시 나라는 사람의 성향인가 보다.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하더라도 그 갈래가 끝도 없이 퍼져나간다. 그래도 이런 버릇 덕분에 연재 중단 없이 포스팅을 이어가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한 가지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거만 찾는 스타일이라 한동안은 수프리모 디카페인 커피만 마실 것 같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해도 혹시나 더 맛있는 커피가 있다고 한다면 언제든지 시도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맛있는 커피를 여러개 두고 골라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후보지가 쌓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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