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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Oct 02. 2023

월말정산_09_02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9월의 일상을 잘 지켜나간 편은 아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글쓰기를 이어가기까지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원인은 게으른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휴가 기간 동안에 매일 지켜나가던 루틴들을 잠시 중단시켰을 때 소설 쓰는 거 역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었다. 쓰는 것만을 목적으로 계속 이어가다보니 내용이 어그러지는 게 느껴졌고 이건 원래의 목적과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완성시키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쓰는 행위를 멈췄을 뿐 생각까지 그만둔 건 아니었다. 강릉에 가서도 게스트 하우스 다락방에 올라가 소설을 구상했다. 아이패드에 담아둔 이야기를 한번 쭉 훑어보며 그동안 써둔 것 중에 고쳐나가야 할 것들, 앞으로 써나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 기록했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이대로 작업하면 되겠다고 마음먹고 조금 자신만만하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운동이나 영어공부와 같은 규칙적인 일들은 지켜나갔지만 소설만큼은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여행을 다녀오고도 일주일이 지나 소설을 쓰기 위해 겨우 자리에 앉았을 때 이유를 깨달았다. 계속 써나가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게 이미 써둔 것을 고쳐나가는 일이었다. 


이미 완성한 글이 아니라 중단에 멈추고 앞부분을 수정해야 하다보니 계속해왔던 것처럼 써지는 대로 쓸 수만은 없었다. 제대로 나가야 할 길이 있었다. 구조를 정확히 맞추려다보니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뒷부분을 망쳐버릴까봐 겁이 났다.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으로 또 1주일을 보낸 것 같다. 이런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서 결론이 우습기는 해도 결국은 그냥 자리에 앉아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내는 것뿐이었다.


물론 이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책도 하고 조급해하기도 했다. 포스팅에서도 종종 언급했지만 난 모든 습관이 무너져도 글 쓰는 것만 잘 이어나가면 삶이 그럭저럭 꾸려나가진다. 반대로 말하면 모든 게 완벽해도 글이 안써지면 땅을 파고 들어간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번에도 주저앉아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나를 다루는 법을 깨닫게 된 건지 무너졌을 때 그대로 좌절하기보다는 그 상태로 드러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하다 보면 결국 일어나게 된다는 걸 경험했다. 자리에 앉기가 어려우면 그 시간에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봤다. 다행히 이번달에 내게 좋은 자극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가 그랬고, 아껴두며 종종 꺼내보는 노르웨이 스캄이 그랬고, 최근에 빠져들어 반복 재생 중인 하츠코이가 그랬다.


늘 그랬지만 좋은 작품을 보면 나 역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진다. 언제가 나를 일으키는 건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가 있는 순간들이다. 덕분에 부담은 덜고 여유를 머금고 소설 쓰기를 다시 이어가는 중이다. 덧붙여 길고 길었던 예술인 증명을 완료하고서 창작 지원금도 신청했는데 지원금이 나오면 단편영화도 찍어보고 싶어 구상 중이다. 이야기에 계절 분위기가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데 여태까지는 여름 이야기만 써봤지만 처음으로 겨울 이야기를 잘 녹여내보고 싶다. 2년 전의 작품과 어떻게 달라질지도 조금 기대된다. 


자연스럽게 10월의 계획으로 넘어가보자면 우선 꼭 하고 싶은 게 있다. 여름에는 워낙 날이 더워 밖에서 뭘 하기가 어렵다보니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가을 날씨로 넘어가서 밖을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우선 패러글라이딩을 꼭 하고 싶다. 사실 나의 첫 사회생활인 드라마 제작사를 들어가기 전에 친구들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단양에 간 적이 있는데 날씨 때문인지 이미 단양에 도착하고서 패러글라이딩 취소 통보를 받았었다. 이것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서 너무 아쉬웠는데 이번에야말로 꼭 체험해보려고 한다. 


모든 행위들을 혼자 하는 걸 선호하는 성향이긴 하지만 이건 아빠와 함께할 생각이다. 겸사겸사의 이유인데 가족 중에서 아빠와는 정말 이렇다 할 기억이 없다. 10대, 20대까지도 정말 텅 비어있을 정도로 아빠와는 함께한 추억이 없는데 이런저런 시간을 더 보내면서 아빠를 알아가보고도 싶다. 


가족 중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함께 할 사람이 아빠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캠핑, 밤낚시 등등의 로망을 공유할 사람은 아빠뿐이다. 성향이 잘 맞으면서도 시간을 보낸 적 없다는 사실은 참 모순적이지만 그 괴리감을 채워보고 싶다. 


일상에 있어선 몇 개의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우선 약 3개월 동안 수강했던 통기타 수업은 연장하지 않았다. 수업에 빠지더라도 내가 원하는 곡으로 연습할 때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이제 독학으로 쳐볼 생각이다. 아무래도 수업이 아니다보니 덜 열심히 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굳은살만큼은 계속 박혀있게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10월 중으로 언니가 신혼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다. 한 집에서도 엄청 붙어있고 이런 건 아니었지만 우리 집의 구심점 역할이었던 사람이 언니였다보니 아마 언니가 나가면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지만 그런 변화에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솔직함과 편안함을 가진 채 잘 지내보려 한다.


11월에 있을 언니의 결혼 때문에 축사도 10월 중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가능하다면 축사 내용도 브런치에 공유해보고 싶다. 밤마다 감성이 차오르면 한번 씩 축사 내용을 수정하고 있는데 매번 쓰다 말고 울어버린다. 언니와의 추억들이 떠오르다보니 그 기억들 때문에 읽다가도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 감정들도 잘 다듬어서 결혼식에서 너무 오열하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다짐이다. 9월까지 가장 큰 목표는 아무래도 솔직해지는 거였다. 스스로의 감정을 잘 캐치하지 못하는 편이다보니 남을 배려함에 앞서 나에게 너무 무심했던 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솔직하고 편하려다보니 종종 다른 사람에게 툭툭 내뱉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어떤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던 건 남을 쉽게 대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알아차리자 가고 싶은 방향이 정해졌다. 


다정함을 잘 지켜내고 싶다. 이렇게 수정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솔직함을 열심히 연습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이제는 정말 어느 정도 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거 같은데 내가 깨달은 나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너무 휘두르지 않고 따뜻하게 잘 설명해주는 연습을 해나가려 한다. 나를 해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려 억눌렀던 나였으니까 이제는 나를 아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잘해줄 수 있는 법을 잘 터득해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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