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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Oct 27. 2023

오버 트레이닝

사랑하는 것들을 너무 사랑하지 않는 법

어떤 교수님이 말하시길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즐기기 위해선 한꺼번에 소모해버리면 안된다고 하던데 쉽지 않다. 맛있는 게 보이면 한입에 넣고 싶고 재미있는 게 있으면 질릴 때까지 하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니까. 일정한 속도로 꾸준하게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노래 취향만 해도 그렇다. 한번 꽂힌 노래가 있으면 주구장창 그 노래만 듣는다. 입에 담고 잘근잘근 씹고 가루가 돼서 모두 소화가 될 때까지 들어 삼킨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계절 내내 꽂혀있기도 한다. 한동안 그렇게 소비하고 나면 소비를 넘어 소멸의 상태로 들어가 또 한동안은 그 노래를 찾아 듣지 않게 된다. 


며칠 전엔 근처에 나갔다가 새로 생긴 빵집을 발견했다. 오픈 기념으로 모든 메뉴를 할인하고 있었다. 홀린 듯이 이끌려 들어가보니 갓 나온 빵들이 한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욕망을 누르고 눌러 꼭 먹을 만큼만 담았다. 욕심을 그렇게 억누른다고 했는데도 사실은 조금 삐져나와서 한 번에 먹기엔 양이 많았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하루 지나면 분명 맛이 덜해질 걸 알기에 끝까지 욱여넣었다.


다음날에도 빵생각이 났다. 다행히 위장이 크게 무리하지 않았는지 속이 아프진 않았다. 언니 결혼식이 코앞이니 자제하자는 이성과 어제 사오지 못한 빵까진 먹고 싶다는 욕심이 부딪혔다. 결국은 본능에 이끌려 빵집을 갔다. 어제보다는 덜 맛있어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먹고 싶은 게 많았다. 이번엔 빵이며 샐러드며 디카페인 커피까지 다양하게 골랐다.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모두 끝내버리고 싶었다. 다시는 생각나지 않게끔.


집에 와서 사온 것들을 하나씩 먹는데 이상하게 어제와 달랐다. 몇 가지의 빵으로 금방 행복해졌던 첫날과 달리 둘째 날 사온 것들은 그냥 그날 치의 식량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남았다.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것. 나는 그걸 지키기가 어렵다.


며칠사이 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 아니 조금 지나칠 정도로 빡세게 해버렸다. 저번달에 살이 많이 빠지면서 생리를 걸렀다. 몸무게가 줄어들면 임신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아니라 생리를 거르기도 한다는데 내 몸이 그런 거 같았다. 생리전 증후군이 심한 편이라 생리를 안하는 동안 거의 두 달 내내 증후군을 앓았다. 


한동안 몸져누워 지내다 호르몬에 휘둘리는 게 싫어졌다. 이렇게 된 거 몸 상태를 무시하고 체력부터 길러두자 싶어 운동을 했다. 무리겠지 싶던 몸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근력운동을 하고 나서 온몸의 혈관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이 좋았다. 이러다 머리까지 펑하고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묘한 쾌감이 중독적이었다. 


허벅지가 터질 거 같이 하체 운동을 확실히 끝내고서 갑작스레 생리가 시작됐다. 확실히 몸이 좋아져서 다시 하는구나 싶어 안도했다. 사실 진짜 몸을 위한 거였으면 이때 운동을 좀 쉬었어햐 하는 게 맞다. 아무래도 생리 기간에는 관절도 약해지고 회복도 느리니까. 하지만 왠지 운동의 쾌감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기도 했다. 결국 욕심을 부렸다.


스쿼트와 플랭크를 끝의 끝까지 버티며 땀을 흘렸다. 겨우 진정되던 근육들을 다시 깨웠다. 회복될 새도 없이 요가며 댄스 수업이며 빠지지 않았다. 체력이 좋아지던 것도 잠시, 오히려 운동을 시작하던 때보다도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관절에도 무리가 생겼다. 더 무리하면 오래 아플 거 같아 결국 오늘은 요가를 빠지고 말았다. 오버트레이닝이 온 것이다.


날이 추워지면 나는 몇 가지 기억을 떠올린다. 그중 한 가지는 매번 이 시기에 준비했던 학교 공연이다. 그땐 내 인생의 모든 답이 학교에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했다. 그때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 지금 체력이 유달리 더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힘들면서도 그렇게 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만큼 연극을 너무 사랑했고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니, 돌아갈 틈이 남아있지 않다.


난 많은 순간 어떤 것들을 그 자리에 두고 떠날 때 절대로 돌아보지 않을 생각으로 모든 걸 쏟아버리곤 한다. 어릴 땐 그게 나만의 인생관이라 여기며 쿨하다고도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걸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불태워버리면 나중엔 모두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건 조금 위태로운 일이다. 


교환학생을 하면서 여행을 다닐 때 여행지를 떠날 때면 늘 불안함이 남았다. 혹시 즐기지 못한 건 없는지 다시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보고 느낀 건지 조급했다. 같이 여행을 다니던 동생은 “여행지에 아쉬움을 남기고 와야 그곳을 다시 방문할 수 있대.” 라며 아버지가 해주셨다는 말을 이야기해줬다.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한다면 약간의 아쉬움을, 여지를 남겨놔야만 사랑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글쓰기, 연출, 그림 그리기, 춤추기. 한 번에 불태우지 못한 것들의 공통점은 원하는 만큼 끝내버릴 수 없게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삼켜버리는 내가 한 입에 소화할 수 없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조급할까. 뛰어나지 못한 덕분에 사랑하는 것들을 오래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슬프지만 그렇게라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은 그 모든 것들도 통달하게 되어 불태우곤 훌훌 털어버릴지, 좋아하는 걸 은근한 열기로 쭉 이어가는 법을 드디어 배우게 될지. 어떤 게 먼저일지 알 수 없지만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계속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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