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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Jan 01. 2024

연말정산_01

갑자기 찾아온 손님

길고 길었던 12월이 지나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12월에는 특별히 바라는 게 없었던 만큼 월말정산 겸 연말정산으로 같이 기록해보려고 한다. 


사실 최근의 일부터 고백하자면 1년 만에 공황장애 증세가 다시 찾아왔다. 감기의 여파로 잠을 못 잤고,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았고, 가족과 트러블이 생겼고, 감기약의 영향으로 호르몬도 불안정해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우울증세가 시작되면서 깊이 가라앉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너무 익숙하게 겪던 감정이었는데 오랜만에 찾아와서 그런지 굉장히 많이 당황했고 흔들렸다.


브런치에다가는 멋지게 극복하고서 이제는 완치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말하더니 실제로는 다시 병 때문에 골골 대는 게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욱이 왜 하필 지금? 한 해가 다 끝나가는 와중에 다시 터져버린 병이 조금 원망스럽고 속상했다. 영원히 내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도 많이 커졌었다. 


하지만 글로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는 걸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물론 상태가 더 나빴다면 약물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겠지만 이번엔 따로 약을 처방받진 않았다. 1년 동안 브런치 연재를 꾸준히 지켜온 것. 나를 위해 글을 쓰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부딪혔던 일들이 모두 허사가 아니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나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시간 내가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어준 많은 사람들이 있어준 덕분이다.


세상이 끝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나를 덮쳤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서 너무 무서웠다. 다행히 요가 수업이 잡혀있는 날이었다. 세수를 하러 가는 그 짧은 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지만 나를 위해 움직였다. 걸음걸음마다 발이 무겁고 감기를 옮기지 않으려 마스크를 쓰느라 호흡은 더 불안정했다. 한편으론 마스크로 얼굴 표정을 가릴 수 있다는 게 다행이기도 했다. 


요가를 하는 동안 여러 번 숨이 쉬어질 거 같지 않아 나를 다잡아야 했다. 너무 답답한 순간엔 잠시 코밑까지만 마스크를 내려 숨을 찾아왔다. 사람들의 말이 느리게 들려오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요가를 해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아 이번엔 정말 많이 아프게 됐구나 그 상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해치는 대신 나를 위해 움직여줬다는 그 행동이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마음이 힘들면 위가 더 쪼그라든다. 밥이 들어갈 공간을 잘 내어주지 않는 거 같다. 이틀 만에 3키로가 빠졌다. 쓰러질 거 같은 순간에만 초콜릿 같은 걸 입에 넣어줬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겠지만 먹지 않으면 정말로 더 심각해질 뿐이란 걸 알고 있기에 그나마 나를 위한 행위였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엄마가 요리하고 간 음식을 먹기도 했다. 


마음이 계속 땅으로 꺼질 때 집에 있는 실내 자전거를 딱 30분씩 탔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머리를 비워주려는 행동이었다. 움직이고 나면 확실히 생각이 가벼워졌고 다행히 아직은 운동할 정도의 힘을 내어준다는 사실이 또 고마웠다. 


그리고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으니 혼자 생각하면 상처만 더해질 뿐 절대 나아지지 않을 걸 이제는 알고 있다. 다른 사람하고의 갈등은 여전히 나를 두렵게 만들고 내 세상을 뒤흔드는 공포처럼 느껴지지만 나를 사랑해준 가족들과 내가 사랑해온 나를 믿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은 내 힘으로 분명 바꿔낼 수 있다고 작년 한 해동안 무단히 부딪혀온 수많은 나를 믿기로 했다. 직접 마주할수록 상황은 나아졌다.


다행히 2023년의 마지막은 내가 바랐던 대로, 너무 아프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은 밥도 잠도 패턴을 안정화시키지는 못해 상태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머지않아 회복될 걸 알고 있다.


새해의 시작 글인데 가장 밝히고 싶지 않던 공황증세와 우울증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건 사실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고 싶고 괜찮아 보이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도 모두 나의 일부다. 가끔은 우울한 감정에 잠겨 세상이 흔들리는 기분을 겪어내고, 어쩌면 아마 평생을 이 상태와 싸워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부정하고 미워할수록 이 상태에선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왜냐면 우울한 나도 나의 일부라 절대 떼어낼 수가 없다.


불안장애가 극심했을 때 이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절대로 갖지 못할 희망이라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너무 대단해서 이제 벗어난다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지 하고 혼자서 상상했다.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기쁜 것들 투성이라 하나의 일들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기쁜 날이 있다면 슬픈 날이 있고 화가 나는 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평화로운 날도 있다. 아마 하나의 상태로만 흘러간다면 좋은 감정도 제대로 느끼기는 어려울 거다.


그 모든 나를 받아들이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12월을 앞두고 했던 단 하나의 다짐은 나답게 살아내는 것, 솔직하게 살아내자는 약속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준 분들에게 아팠다가 괜찮아지고 또 잘 살아보려는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었으니까. 그럼 또 이 이야기를 읽는 누군가는 아팠다가도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또 살아지고 싶어질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까. 


연말정산이라 하고 사실은 요즘 상태를 늘어놓는 걸로 꽉 채워버렸지만 금요일까지 또 잘 살아본다음 못다한 이야기들을 더 적어보려고 한다. 


1월 1일을 맞이한 김에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늦은 연말 인사 겸 새해 인사를 보냅니다. 아직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정해지지도 않았을 때부터 제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려분 덕에 더 힘을 내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저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아주 친한 사람 하고에서의 대화보다 브런치 글을 통해 저를 더 많이 깊게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읽어주시는 분들하고 내적인 친분이 쌓인 기분이에요ㅎㅎ 살아가면서 다양한 감정을 겪어낼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2024년에는 부디 평안한 일상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모두 다양한 사연 속에 살아가겠지만 그 하나하나의 삶들을 모두 응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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