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동안 대화다운 대화가 없었다. 이건 지극히 내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 대화들은 뭔가 후련해지기보다 피곤함을 더했다.
우선은 대화 폭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그 친구는 대화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대부분이 아는 지인과 직장 상사에 관한 험담이었다. 새로움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것도 아니고 매번 같은 욕을 반복해서 쏟아냈다. 다른 친구도 함께하는 자리였고 나는 지금 우리의 생활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갈라 치더라도 그 친구는 무섭게 자신의 험담 이야기로 우리를 끌고 들어갔다.
나중에는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라 잠시 숨을 고르려고 화장실로 피신했다. 잠깐 다녀올게 하고서 자리를 뜨는데 그 친구가 나를 보고는 “그럼 너 다녀오면 이야기할게!”라고 해맑게 말했다. 최근 봤던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다. 결국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그 친구의 아는 사람 이야기가 이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소음을 씻어내듯이 혼자서 침묵 속에 머물렀다. 명상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소란함을 환기시켰다.
시끄러움을 얻어간 대화가 있었는가 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대화도 있었다. 전에 말했던 인터뷰 영상을 찍기로 한 날이었다. 당일 아침, 한 친구가 갑자기 잠수를 탔다. 제대로 약속을 취소한 것도 아니고 애매한 말만 남긴 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짜증도 나고 당황한 마음에 훅하고 화가 올라왔다. 미용실을 가려고 더 일찍 나왔어서 일단은 시간이 있었다. 머리를 하는 동안 우선은 다른 친구라도 보자고 마음먹고 그 친구와 연락해 만나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하기로 했던 건 나름 기대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3년마다 기록하기로 했던 만큼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서로 들어주고 또 응원해주며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나마 소통할 수 있다면 그거대로 좋은 인연을 유지해나가는 방법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내 앞의 상대가 누구로 달라져도 상관없을 만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로 인터뷰가 끝났다. 정확히는 각자의 말만 떠들어댄 느낌이었다.
점심을 함께 먹자는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에너지 회복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알 수 없는 헛헛함을 느끼며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리는 말을 뱉긴 했지만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떠들어댔을 뿐 서로를 공유하는 소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준비했던 질문은 그 친구에게 너무나 쉽게 무의미한 가치가 돼버려 인터뷰 질문에서 삭제됐다.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은 없고 본인의 생각에 맞춘 틀에 내가 움직여주길 바랬다.
친구에게 궁금한 것도 많고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점점 호기심이 사라졌다. 친구 앞에 있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돼도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거 같았다. 영상을 찍어주고 질문해주는 목소리가 있다면 내가 아닌 누구여도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됐다. 서운함을 느꼈다거나 짜증이 났다는 감정보다는 정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거 같아 조금 씁쓸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게 없고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면 왜 굳이 우리가 만나야 했던 걸까.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다. ‘대화의 밀도’라는 책인데 좋은 대화, 나쁜 대화에 관한 작가의 생각과 사연들을 담은 내용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의미 있는 대화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이야기를 하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개인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지에 관한 것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생각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때 서로 편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혼자만의 대화에서 겨우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보니 한편으론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항상 이런 불편함을 느낀 건 아니었다.
직접 만난 건 아니지만 카톡으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은 친구가 있었다. 나는 후각을 잃은 일에 대해 말하고 그 친구는 새로 만나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걱정하고 응원했다. 단순히 안부를 묻고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한 말들을 건넸다. 아마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듣지 못할 위로였고 또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가 하지 않았을 응원이었다. 서로에게 딱 맞춘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결국 좋은 대화란 그런 게 아닐까.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던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 딱 맞춘 언어들을 주고받는 것. 그로 인해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생각을 헤아려주고 있다는 관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몇 시간을 떠들었는데도 생각이 풍족해지고 몸이 개운하다. 아마 몇 주간 혼자서 계속 에너지를 채워야 했던 건 그런 대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다. 이번주에도 약속이 잡혀있어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모쪼록 좋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