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조우
나는 누구일까. 언론사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자주 하던 질문이다. 그때는 정말로 나를 알아가려 하기보다 이 서류를 볼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나를 끄집어내려고 했다. 단점은 모두 숨기고 장점들만 모아서 추려내고 싶었다. 내가 나를 돌아보려 해도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야? 물어보고서 마음에 드는 답변을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 친구들이 보는 나였으니까.
자소서를 기반으로 면접을 보게 됐을 때 많이 불안했다. 거기 적혀있는 내가 정말 나 같지 않았다. 겉보기에만 좋을 뿐 실은 그것보다 더 불안정한 사람이었고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 보였다. 언제 내가 까발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면접을 준비할 때부터 이미 겁을 먹었다. 거짓말로 점철된 서류를 제출한 것부터 내가 잘못을 저지른 거 같았다. 면접을 보는 내내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제로 어떤 게 내 마음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4년 전, 마지막으로 면접을 쳤던 곳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소설 강의를 기다리던 중이었고 마침 공고는 내가 본 날 아침에 시작됐다. 이 정도면 운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이트를 들어가 자소서 질문을 확인했다. 늘 그래왔듯 내가 왜 드라마 pd에 어울리는지, 내 강점은 무엇인지 나에 대해 소개하는 질문이 있었다. 늘 불안하기만 했던 그때와 다른 마음이 들었다.
1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내가 하고 싶었던 취미들을 배우며 나를 많이 알아갔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내 장점은 잘 알고 있었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답변들이 있었고 차분히 적어가다 보니 내용이 정리되고 있었다. 4년 전에는 텅 비어 있던 경력 사항도 이제는 어느 정도 채울 수준이 되었다. 여러모로 많은 준비가 됐다.
자소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막막한 마음에 친구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자소서 내용을 잘 답변할 수 있대.”라며 강사에게서 들었다는 말을 알려줬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웃어넘겼지만 이제서야 좀 더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지금 내가 덤덤히 답을 작성할 수 있는 건 나만의 답을 묵묵히 찾아온 덕분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자소서도 다시 찾아봤다. 너무 힘들게 준비했었던 기억 때문에 몇 년 동안은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분명히 내 딴에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어진 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읽어본 자소서에선 다른 인상을 받았다. 늘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때 역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충분히 치열했고 반짝였다.
결국 준비가 됐다는 건 측정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있다기보다 내가 나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는 건 아닐까 싶다. 두려움이 찾아오던 순간에 한 웹툰 작가님은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대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가야 하는 때가 있다고. 아마 인생이라는 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은 그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일 같다. 결국 완성되기 전까지 준비가 끝났다는 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지난 4년을 돌아보니 나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