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_01

자의식을 깬다는 것

by 김물꽃

“당신이 약이나 술기운 없이 사람들 앞에서 편안하게 춤을 춘다면 당신은 당신 그대로의 상태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도의 어떤 사업가가 말했다는데 나는 이 말에 완전히 공감한다. 사실 난 춤을 좋아하고 되게 잘 추고 싶지만 굉장히 몸치이다. 춤을 잘 추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은 당연히 존재했지만 동시에 내가 부러워했던 사람은 마음껏 춤을 추는 사람들이었다.


친구 중에 한 명은 객관적인 기준에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노래방에 가든 친구들끼리 춤을 출 자리가 있으면 그냥 그 실력대로 춤을 췄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추는 그 모습이 멋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정쩡한 내 몸짓이 부끄러워서 더 움츠리게 됐고 장난처럼 춤출 자리가 있으면 섣불리 긴장하곤 했다.


스물아홉을 한 번 더 맞이하며 춤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건 그런 이유였다. 물론 춤을 잘 춰보고 싶기도 했고! 소모임이라는 어플을 통해 집 주변 댄스 모임에 가입했다. 완전히 몸치였기 때문에 모임이 잡히더라도 과연 나갈 용기가 생길까 망설였지만 생각보다 일찍 모임이 잡혔다. 바로 어제 1월 8일이었다. 일단 고민들을 뒤로 넘기고 빠르게 신청한 뒤 돈을 입금했다. 이틀 전까진 환불도 가능했지만 내 성격에 환불을 신청하지는 않을 걸 알기에 바로 진행해버린 것이다.


곡명은 뉴진스의 디토. 원데이 클래스 형식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모두가 그날 처음 배우고 그날 끝난다는 게 심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수업에 가기 전 춤영상을 미리 봤는데.. 쉽지 않았다. 발동작은 왜 이리 많은지 하루에 다 배운다는 게 불가능할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후렴 부분에 있는 발동작만이라도 미리 알아가자 싶어 혼자만의 특훈을 가졌다. 라타타타 하는 가사에 발을 움직이는 부분인데 진짜 며칠 동안 겨우 익히기만 했던 거 같다.


그리고 클래스 당일. 새로움에 대한 긴장이 느껴졌다. 하지만 걱정보다는 즐겁게 배우자는 생각으로 긴장까지도 고스란히 느끼려고 노력했다. 연초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 뒤에 숨어있을 요량이었던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거울 앞에 나를 마주해야 했다. 오늘의 목표는 춤을 잘 추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추는 거였다. 못 추는 나를 그대로 바라보고 선생님의 강의에 맞춰 최대한 즐겁게, 자신 있게 몸을 움직였다.


물론 잘 추게 보이는 듯한 조거팬츠를 입고 간 덕도 있었지만 거울 앞의 내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동작을 따라갈 수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더 잘 따라갔다. 물론 최종 영상을 찍을 때에는 박자에 맞추지 못해 구멍이 난 부분도 더러 있었지만 당황하며 숨기보다는 뻔뻔하게 다음 춤으로 연결했다. 못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 할 수 있는 동작들을 따라 추다보니 정말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최종 영상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는데 막상 영상을 찍을 때가 되니 한 동작이라도 제대로 추고 싶어 집중하게 됐다.


대학에서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 연기수업에서 교수님은 자신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의식을 버려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자의식을 깨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내가 이해했던 자의식이란 내가 숨기고 싶은 모습을 감춰둔 단단한 벽을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연기를 전공한 친구들 앞에서 미어캣 흉내를 내고 되도 않는 연기를 하는 동안 늘 얼굴이 빨개졌지만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조차 깨버리고 싶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척 용기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의식을 깨려 했던 그 과정들 때문에 내 자의식이 더 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달리 거울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뚝딱이는 과정 자체를 사랑했던 어제야말로 내가 진짜 자의식을 깨고 나온 순간이 아니었을까. 자의식을 깬다는 건 숨기고 싶은 모습을 감추고 다른 모습을 내보이는 게 아니라 숨기고 싶은 모습까지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였던 거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인 노래방에서조차 춤추기를 부끄러워했던 나지만 이젠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잘 추든 못 추든 그게 나니까. 언젠가 뉴진스의 디토를 선보일 날을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