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나비효과

트라우마_03

by 김물꽃

5년 만에 상담을 받게 된 건 다름 아닌 전남친 때문이었다. 전남친때문에 받게 된 상담이 어쩌다 트라우마 치료까지 나아가게 됐을까. 새삼 신기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모든 일들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스물네 살 무렵 처음으로 받았던 상담이 끝나고 나는 최악의 해를 보냈다. 저주에 씌었다고 느껴질 정도라서 어서 이번 해가 끝나고 내년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물아홉, 다시 상담을 받게 될 때에도 나는 이번이 끔찍한 한 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작년은 상업영화에서 처음으로 일하게 된 시기였다.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배움도 많았지만 사실 끝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돌아보면 그 시기를 보내는 과정도 상당히 힘들었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일했고 같은 팀에 있으면서도 내가 맡았던 업무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보니 화합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한편으론 소외감을 느꼈다.


그런 때에 전남친을 만났다. 사실 일하기에 바빠 연애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늘 하루만 잘 버티길, 그리고 내 능력껏 열심히 해서 살아남아보자 뭐 그런 악바리 정신으로 버티는 와중이었다. 나보다는 다른 팀원과 친분이 있던 전남친은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사이였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팀원 친구를 잘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그냥 인간적으로 착한 사람인 거 같다 정도에 불과했다.


더욱이 그 당시 전남친은 꽤 오랜 기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물론 그런 여부에 상관없이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바람피우는 거나 환승하는 거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이후 애인 있는 사람에게는 애초에 마음을 주지 않는 편이었다. 또, 상담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나는 꽤 높은 수준의 도덕관념을 갖고 있는데 그걸 타인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엄격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본능적인 호감을 따르기보다는 내 가치관을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다 한번 전남친이 있던 팀에 물어볼 게 있어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사실 괜한 오해가 생기는 게 싫어 이성 스태프에게 구태여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 팀엔 애초에 이성뿐이었다. 막내에게 연락을 해볼까 싶다가 그래도 팀원 친구와 친분이 있다는 게 구실로 삼기 좋아서 전남친에게 카톡을 보냈다.


용건을 끝내고 연락을 마무리하려는데 애매하게 연락이 이어졌다. 수작을 부리나 싶었지만 친구를 통해 전남친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들었어서 그런지 내 착각일 거라 생각했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스태프이다 보니 칼같이 끊어내기도 애매해서 그야말로 철벽 치는 답변으로 연락을 어렵게 만들었다. 애초에 답을 확인하는 시간도 짧아서 3시간 정도였으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의미로 알아듣길 바랬다.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다고 해도 이 정도면 나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멋대로 오해한 건 아닌가 싶어 친구에게 카톡을 보여주며 한번 더 확인해봤다. 친구 역시 호감이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여자친구도 있는 사람이 나한테 이러는 게 전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며 친분을 가장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친구는 전남친에게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물었다. 전남친은 여자친구와 권태기인데 자신이 노력해도 여자친구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며 서로 만날 시간이 된다면 헤어지려 하는데 촬영 특성상 지방에 계속 나와있으니 이야기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때에도 그런 이야기는 여자친구와 직접 하는 게 맞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우리한테 뭐하러 하는 거지 싶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금 마음을 쓰게 된 건 전남친의 가족사 때문이었다.


전남친은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이야기를 하는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 그때는 괜히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지나고서야 알게 됐지만 나는 많은 순간 전남친에게 엄마아빠를 투영했다.


엄마는 마흔 살 정도 됐을 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너무 울어 기운이 빠진 엄마가 내게 “엄마는 이제 고아야” 하고 말했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또, 아빠는 고등학생 정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모에게서 부모를 잃은 슬픔을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보니 나는 늘 아픈 부모님,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 곁을 떠나는 건 사람에 대한 배신이며 내가 누군가를 버리는 행위라고 느껴졌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겐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되어 커다란 죄책감을 가지며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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