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01

나를 닮은 인물

by 김물꽃

2월부터 구상하기 시작한 웹소설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저주에 걸린 마녀 이야기인데 처음엔 정말 간단한 아이디어로만 시작했다. 아이디어만으로 이야기를 다 채우기는 부족했다. 사실 내가 마녀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다 보니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더 구체화시켰다. 마녀 재판에 대해서 그 당시 기록했던 책을 보면서 사람들이 마녀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다.


책에 있는 내용을 내 식대로 해석하며 읽다보니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랐고 설정했던 부분과 어울리는 내용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공부했던 작법서를 활용해 줄거리를 담아내는 트리트먼트를 작성했다. 중간중간 비어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을 더 고민하며 보충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채워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큰 줄기를 완성하고서 보는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요리를 다했는데 간이 심심한 느낌? 맨 처음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때를 생각하니 그 허전함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캐릭터가 점점 착해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착해지기만 한다기보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을 방식으로 계속 다듬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의 일이다. 과도한 책임감이 부여되는 장녀가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동생에게 매를 들어 입막음시킨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주인공은 11살짜리 여자 아이였다. 실제로 내가 장녀는 아니지만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만든 이야기였다.


우리 집의 장녀, 우리 언니는 매우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미안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에서만큼은 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본인의 몫을 제대로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은 언니보다도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동생에게 폭력을 쓴다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주인공 역시 엄마에게 훈육받은 대로 동생에게 똑같이 행동한 것이기 때문에 비난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안쓰럽게 보이기를 바랬다. 장녀를 같이 욕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욕먹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서 그런지 자꾸만 안쓰럽게 보일만한 건덕지들을 남기게 됐다.


어쩌면 캐릭터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나를 대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쓰는 주인공들은 모두 나에서 출발한다. 내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찌질함을 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내 위치를 지키고 싶은 이기심을 담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그 모습들을 숨기더라도 영화에서만큼은 모든 걸 표출해도 될 법한데 은연중에 자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다행히 단편 영화 작업에서는 멘토를 해주시던 감독님의 피드백을 들으며 내가 자꾸 몸을 사린다는 걸 깨닫게 됐다. 캐릭터에 나를 대입시켜 보던 것에서 벗어나 철저히 방관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히는 순간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요소들을 거둬내니 오히려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그때의 피드백이 있었던 덕분인지 이번에도 내 캐릭터가 어디에서 이 모양이 되어버린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그리려고 하는 마녀는 자신의 감정을 믿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내 경험을 담아 힘들었던 일을 극복해나가는 인물로 설정했다보니 비난보다는 응원이 더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이야기 자체에 대한 객관성을 떨어트려 마녀가 할 법한 행동의 폭을 너무 줄여버렸다. 그 결과 욕을 먹기는커녕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하는 평범한 인물로 다듬어져버렸다.


정말 나를 담아낸 인물이라면,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경험을 비춰본다면 마녀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폭발시켜봐야 성장의 계기가 주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다른 사람하고의 관계를 망칠까봐 망설였을 때보다 관계를 망가뜨릴 걸 감안하고 제대로 덤벼봤을 때 그걸 수습하면서 많은 걸 깨닫게 됐으니까.


수정의 수정을 거듭한 마녀는 부디 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인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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