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따돌릴 때

트라우마_16

by 김물꽃

쫑파티는 자존감이 계속계속 부서진 날이었다. 깁스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지하철을 타고 회식장소로 찾아갔다. 몸때문에라도 쉬고 싶었지만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쫑파티 장소에 도착해 회계팀 테이블에 앉아있었지만 불편했다. 제작팀 소속이었지만 제작팀이 아닌 것 같았다. 갈등을 풀어야 하는 친구는 언제 올까 불안했다. 다른 작업이 있던 터라 친구는 늦게서야 등장했다.


친구의 무시가 다시 시작됐다. 인사는커녕 눈을 맞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보려 해도 틈이 없었다. 마음은 계속 조급해져갔다. 술도 못 마시는 상태라 쫑파티에 오래 남을 수도 없었다. 다른 스태프들은 몸 좀 괜찮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제작팀은 관심이 없었다.


사실 따지자면 이미 내팽개쳐진 느낌이었다. 내가 다쳤을 때 사고를 낸 당사자이기도 했던 스태프는 나도 제작팀 여행을 같이 가냐고 물었다.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이미 내가 없는 단톡방이 있었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애당초 그 여행 이야기를 했던 건 나와 그 친구였다.


내가 했던 계획에 이제는 내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참 헛헛했다. 초대를 원했다기보다 그렇게까지 나를 배척하려 하는 게 공표되지 않은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당황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썼다.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계속 무시당하고 있는 것도 화가 났고 답답했다.


첫 번째 자리가 파하기 전 친구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대화 좀 하자고. 친구는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무슨 얘기?라고 답했다. 그리곤 바로 등을 돌렸다. 쫑파티에서 이야기 해보자고 했다가 이러는 이유는 뭘까. 전남친과의 싸움 때문에?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내가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너무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남아있던 모든 정이 떨어졌다. 그래 이렇게까지 얘한테 매달리진 말자. 내가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관계를 정리했다.


전남친이 소속된 팀에 있던 스태프는 대뜸 우리 테이블로 와서 나와 전남친의 연애 사실을 밝혔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결국 내 연애는 끝까지 누군가의 가십으로 이용되는구나 싶었다. 이제서야 연애 사실을 알게 된 팀원은 내가 자꾸 제작팀 식사에 빠졌다는 둥, 촬영 끝나고 사라졌다는 둥 서운함을 빙자한 장난을 쳤지만 그냥 그 모든 게 이제 지겨웠다.


1차가 마무리될 때 피디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 창문에 비친 내 눈이 공허했다. 제작팀끼리는 다음에 한번 더 보자는 피디님의 카톡이 와있었다. 이젠 정말 다 상관이 없다 싶었지만 이 불편함을 한번 더 견뎌야 하는 건가 벌써부터 피곤했다. 그들만의 친목도 친구의 계속되는 무시도 너무 피곤했다.


최종의 최종 회식 날이었다. 그 사이 뼈가 다 붙지는 않았지만 깁스는 푼 상태였다. 역에서 내려 장소로 걸어가는데 친구와 다른 팀원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방향을 바꿨다. 마주치면 무시당할게 뻔했다. 피해버리는 내가 싫었지만 굳이 내 상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와 다른 팀원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신이 무시하는 걸 티 내지 않으려 하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부러 그 친구 얼굴을 똑바로 보며 직접 인사를 건넸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행동이었다. 다른 팀원들과는 불편할 게 없으니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다 몇 사람이 더 오고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나와 한 테이블에 앉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하는 그 친구가 이제는 웃기기도 했다.


이제는 그 패턴이 보여서 그런지 거기 휘말리는 게 덜했다. 나와 친한 다른 팀원이 도착했을 때 내 테이블로 불러 같이 식사했다. 나를 제외한 제작팀끼리 다녀온 여행으로 테이블이 시끌벅적했다. 그들만의 추억을 공유하며 즐거워 보였다.


나와 한 테이블에 있던 팀원은 내 눈치를 보는 거 같았지만 늘 그랬듯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난 괜찮아, 괜찮아. 별 거 아닌 여행이야. 내가 원하지 않은 거니까 절대 따돌려지는 게 아니야. 이제 만나지 않아도 되는 관계야. 열심히 먹는 척을 했지만 먹는 시늉만 했지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작업을 하느라 늦게 도착한 다른 스태프는 대뜸 공개적으로 내 연애 사실을 밝혔다. 다시금 가십거리로 테이블에 올랐지만 다행히 더 어른스러운 피디님들이 나를 방어해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깁스를 풀었어서 그날은 2차까지 함께 이동했다. 친구는 당연히 나와 제일 멀리 떨어진 자리를 택했고 나는 상사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섞였다. 두런두런 우스갯소리도 나누고 했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를 공격했던 팀원도 나를 계속 무시하고 있는 친구도 피디님 앞에선 나와 잘 섞이는 척을 했다. 피디님이 나에 대한 관심으로 대화를 할 때에만 사람들 속에 섞일 수 있었만 그때뿐이었다. 그게 모두 우스울 뿐이었다.


2차 자리가 마무리될 때 피디님들은 자리를 떠났고 나도 가보기로 했다. 3차에 갈 거냐 물었지만 제안이 진심으로 들리지도 않았다. 피디님들도 없는 그 불편한 자리까지 함께 하고 싶진 않았다. 어서 빨리 이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같이 역으로 걸어가던 중 다른 팀원이 내게 새로운 작품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를 좋게 봐준 사람이 있구나 위로가 됐고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망가져있었다. 지금 멘탈로는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낼 거 같았다. 나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다. 영화 일도 기대되지 않았다. 제작팀 일 자체가 무서워졌다.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그걸 잘 이겨내지 못하는 내가 제일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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