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_02

아플 땐 쉬는 게 답이다

by 김물꽃

오랜만에 안과를 다녀왔다. 지난번에 다녀왔을 때도 브런치에 연재를 했었는데 확인해보니 2달 만이었다. 체감상으로는 한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거 같아 나름대로 뿌듯하기도 했지만 뭐 그렇다해도 결과적으론 건강이 나빠진 셈이었다.


안과에 가면 늘 그렇듯 안압을 체크하는데 간호사 분들끼리 전달하시는 걸 엿들으니 오른쪽은 27로 올라있었다. 전의 포스팅에서 언급했었지만 안압이 오르는 건 보통 스트레스 받거나 피로할 때이다. 그렇다보니 예방하는 방법도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피곤하지 않게 신경 쓰는 것뿐이다. 나름대로 몇달간은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피로가 많이 쌓이긴 했던 거 같다.


확실히 나는 잘 못 쉬는 편이다. 쉬는 날이 있어도 꼭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느껴져서 당장 뭘 하지 않아도 해야 할 것들을 머리로 궁리한다. 그래도 그런 나를 알고 나서부터는 (특히 올해가 되어서 계획한 일이었는데) 일주일에 하루는 꼭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을 만들었다. 이름이 다소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목표인 날이다.


책 읽는 건 평소에도 좋아하기 때문에 취미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날만큼은 생각 없이 보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독서도 금지된다. 하는 거라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낮잠 자고 먹고 싶었던 걸 먹는 정도. 하루종일 유튜브 쇼츠를 보기도 하고 시간을 낭비한다. 물론 이 날을 위해 다른 날에는 철저히 관리하기도 한다.


어쩌면 은연중에 또 그런 삶의 방식이 나한테 강박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쉬는 날에만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평일에 체력이 좋지 않은 날에도 해야 할 리스트들만큼 꼭 지키려고 무리하게 몰아세웠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 예전처럼 괴로워하는데 질질 끌고 가는 느낌은 아니었고 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니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철저하게 움직였던 거 같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만 쉴 수 있다는 게 사실 계속 지켜지는 일은 아니었다. 변수가 생겨 주말 중 하루라도 약속이 있는 날이라면 이틀을 쉰다는 게 또 용납이 안 돼서 휴식은 미루고 일주일을 꽉꽉 채워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몸에서부터 경고 신호가 온 것이다.


증상은 매번 비슷하다. 오른쪽 눈이 굉장히 아픈데 눈알을 꽉 쥐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특히 충혈이 심해서 증상을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다. 일요일에 증상이 시작됐던 터라 당장에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쉬는 것뿐이었다. 사실 일상이 그렇듯 내가 해야 하는 일들도 두 눈으로 보면서 작업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아픈 눈으로는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눈을 감고 우선 고통을 진정시키는 동안 머릿속엔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돌아다녔다. 지금 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될까. 오늘 못하면 이 일은 결국 미뤄져서 더 많은 일들이 쌓일 텐데 다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게 너무 명확해지면 정말 중요한 걸 종종 잊어버린다. 내가 있어야 일이 존재하는 건데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맹목적으로 목표를 향해서 달리기만 하는 것이다.


아마 이번에 안압이 올랐던 건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전에 명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긴 했지만 은연중에 글쓰기에 대한 집착이 커지면서 자는 동안에도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깨어났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잠을 못 자 컨디션이 안 좋은 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면서 쉴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파야만 비로소 쉰다는 게 사실 나한테 가혹한 방침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사고방식에 있어서 조금은 변화가 생긴 걸 알게 됐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고 모든 생각을 잠시 꺼버리는 일뿐이었다. 밀린 잠을 보충하려 낮잠을 자려하는데도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에 집중했다.


몸에서 신호를 보내준 덕분에 내가 쉴 수 있게 된 거야. 정말 중요한 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 건강이야. 일이 밀린다고 해도 내가 그 모든 걸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어.


안과에서 온갖 약들을 받고 며칠 뒤 다시 확인하러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며칠 쉬어주면 분명히 안압은 떨어질 거고 내 몸도 괜찮아질 거다. 아플 땐 쉬는 게 답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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