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쉽지만 아주 어려운 것
나는 가끔 잠자는 걸 무서워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졸린데도 잠에 들지 못하는 상황이 두렵다. 아마 잠이 부족하면 내가 어떤 식으로 예민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인 거 같은데 아마도 그 깊은 곳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담겨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나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의 일들이다. 몸이 차가운 편이라 자는 동안 추워지면 꼭 악몽을 꾸게 되고, 그럼 잠을 설치니 자기 전엔 무조건 수면양말을 신고 잔다. 춥지 않게끔 옷을 더 껴입거나 이불을 완전히 덮고 잔다. 빛이나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모두 차단하고 잠에 든다. 옆으로 누워 자는 것보단 곧게 누워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상태로 편하게 눕는다.
뭐 그렇다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 아니다. 다행히 저번달엔 자기 전 명상을 계속 한 덕분인지 잠드는 것에 대한 공포를 인식하기 전 잠에 들 수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니 침대에 가는 것도 별생각없이 받아들였다. 놀라울 정도로 괜찮은 수면패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습관이 깨진 건 아무래도 호르몬 변화 때문이었다. 생리 때 호르몬 영향을 세게 받는 편이라 모든 패턴이 망가지곤 한다. 식습관과 수면습관 이것만큼은 강박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고 바로 세우려는 편이지만 도저히 호르몬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강박을 내세울수록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거 같아서 이때만큼은 그냥 몸이 흐르는 대로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그걸 다시 바로 잡는 게 정말 어렵다. 겨우겨우 만족스러운 습관을 세웠건만 너무 쉽게 무너져버렸다. 그렇다 보니 생리가 끝나고 며칠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생리가 끝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보냈지만 끝나고도 며칠 잠에 들지 못하니 점점 불안해진 거 같다. 그 사이 그 두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잠에 들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잠이 부족하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나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제대로 일할 수 없으니 잔뜩 예민해진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자리한다. 명상이나 감사일기 같은 수단들로 비워내려 하는데도 쉽지 않았다. 이건 좀 위험한데 싶긴 했다.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안압이 높아졌다. 오른쪽 눈이 충혈되고 압박감을 주는 통증이 느껴질 때 이미 예상했지만 좀 골치 아프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 무시하면 나는 계속 스케쥴을 이어나가다 보니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면 나는 밤을 새웠더라도 하루 할 일들을 그냥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보니 매우 귀찮아졌다.
며칠 쉬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또 얼마동안은 풀어줬지만 꽤나 회복이 더뎠다. 사실은 아직까지도 오른쪽 눈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사이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고 전에 등록해 둔 수업도 있어 나가봐야 했다. 몸이 아파도 미리 약속한 것들은 다 끝내고 싶었다.
눈은 눈대로 좋지 않고 잠은 잠대로 오지 않으니 컨디션은 계속 망가졌다. 이제 뭐 명상과 감사일기 정도로 끌어올리는 게 어려워졌다. 결국 어제 며칠 되지 않았지만 평일에는 늘 글쓰기를 이어오던 루틴을 처음으로 어겼다.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지만 머리가 멈춘 듯이 돌아가지 않았다. 분량만 채우려고 몇 번 끄적이다 도저히 마음이 들지 않아 계속 지우기만 했다.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루틴을 깨면 크게 망할 거 같은 기분이 늘 나를 짓눌렀지만 다행히 그걸로 내 인생이 크게 망하진 않았다. 한편으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앞으로 종종 머리가 안 돌아간다며 노트북을 덮으면 어쩌지 싶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다져졌나 보다. 어제 그런 걱정보다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내일의 내가 오늘 써내지 못한 것만큼이나 더 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좋은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란 믿음.
분량은 채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놨으면 오히려 그거에 대한 실망이 더 컸을 거 같다. 다행히 지금은 내가 뭐가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상태인 것 같다.
잠에 대한 고찰이었지만 글을 쓰다 보니 결국 내가 무서워한 건 잠드는 것보다는 글 쓰는 거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걸 깨닫는다. 이토록 잠보다도 글이 내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