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게.

쓸모없는 초능력 일기 19.

by 김라면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혜윤은 학교 옥상에 누워 구름을 바라보며 영화를 떠올렸다. 피자와 햄버거, 좋아하는 음식들이 잔뜩 떨어지는 걸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가. 영화의 주요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전히 하늘에서 먹을게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리게 느껴졌다. 고3. 어른들은 아직 한창때라고 말하는 나이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학생’이라는 신분의 끝자락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음식이 떨어진다면, 아니, 그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쓸없능. 쓸모 없는 초능력을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혜윤의 능력은 발자국 지우기가 고작이었다. 수렵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쫓기던 고대 시대도 아니고, 도둑질을 할 것도 아닌 마당에 정말로 필요없는 능력이었다. 차라리 커닝을 하는 능력이라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발자국을 지우’는 능력으로 하는 일이라곤 옥상으로 올라오는 일이 전부였다. 살금살금 올라올 것도 아니니 굳이 싶은 일이지만, 이런 때가 아니면 능력을 쓸 일도 없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아침에 입시때문에 엄마와 다투고 나온 것도, 어제 모의고사를 망친 것도, 단짝인 연서는 단어장을 외우느라 정신없어보이는 와중에 괜히 서운하고, 점심은 또 많이 먹은 탓에 살이 또 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수학선생님은 오늘따라 자꾸 문제 풀이를 시키고, 저녁 야자는 째고 놀고 싶은데 지난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또 이어질 잔소리가….

헤윤이 한숨을 푹 내쉬고 눈을 감는데 머리 위에서 누가 쑥- 나타났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연서였다.

내가 필요할 것 같았어.

곧 있을 영어 쪽지 시험에 대비해 영어단어를 외우겠다더니, 잠깐 새 옥상으로 올라온 연서가 혜윤을 폭, 안았다. 내 비법을 다시 전수해줘야겠군. 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연서의 두 손이 혜윤의 두 눈을 덮었다.

복잡한 생각은 말랑말랑하게.

응.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게.

혜윤이 옥상에 누워있으면 연서가 다가와 눈을 감겨줬다. 자신의 쓸모없는 초능력으로 혜윤의 생각을 덜어내주겠다고. 그렇게 연서의 말을 따라하다보면 걱정은 사라지고 금방 기분이 나아졌다.

“짠. 혜윤이의 생각이 젤리가 됐어.”

오늘은 사과맛인가봐.

연서가 어느새 두 손에 놓인 젤리를 혜윤의 눈 앞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먹어치우자.

쓸없능. 쓸모없는 초능력의 사회. 연서는 혜윤에게 자신의 초능력이 ‘복잡한 생각을 젤리로 만들어 먹어치우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혜윤은 연서의 능력이 그게 아니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늘 대답했다.

“응. 먹어치우자.”

고마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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