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했습니다
갈까 말까...
며칠전 날아온 문자 하나.
"ㅇㅇ사이버대학교 학위수여식 일정 안내"
토요일 오후 일정이라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거리,시간을
가늠해보며 고민했다.
마침 주변인들도 "졸업하지 않아?"물으며 꼭 참석하라는
말까지 해준터라 갈팡질팡하던 마음도 참석으로 슬쩍 기울던 참이었다.
명절에 슬쩍 오빠에게 그날 일정이 있냐고 묻자 딱히 없으니
참석겠다고 하고 근래 사이가 소원하던 엄마에게도 슬쩍 물으니 가겠다고 하신다. 장거리 외출을 버거워하는 분이라 함께 가는데 큰 맘 먹고 원정에 나섰다.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2번 환승하느라 1시간 50분 정도 걸린듯하다.
봄 날씨가 내려 앉은 따뜻한 햇살에 나들이 가는 이들도 많아
지하철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이미 도착했다는 오빠네 가족에 마음이 급해진 터라 지하철 역에서 나와 걸음을 빠르게 재촉했다.
거세게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뒤집이고 몸도 휘청댈 정도였지만 어찌저찌 정문에 도착하자 저 멀리 조카를 안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 빠르게 졸업 가운 대여 장소로 가 도움을 받아 옷을 차려 입고, 졸업식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하필...
장소로 가는 엘레베이터가 고장났다고 한다.
원상복구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말에 잠시 기다리다 꽤 가파른 계단을 온 가족이 유모차와 아이를 각각 들고 올라갔다. 오, 세상에...
이미 진행이 반쯤 흘러간 상태라 어리바리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주섬주섬 한켠에 궁둥이를 붙였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가족들이 보였다.
내 말랑이 조카가 좋은 시력으로 멀리있는 날 알아보고 아는체하는 귀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축사, 공연이 끝나고 과별로 보여 포토타임까지 마치자 가족들과 학사모 쓴 모습을 기념으로 잔뜩 남겼다.
호적메이트가 참한 배우자를 만난 덕에 꽃,카드,선물에 열심히 사진까지 찍어준 언니. 어릴때 늘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 이제라도 소원 성취인건가?
가운을 반납하고 어쩌면 학사모 보다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학위증을 찾았다. 자격증까지 여러가지 땄으면 좋았을테지만 4년, 8학기 동안 7학기 내내 입퇴원을 반복하느라 여유가 부족했다.
아..그러고보니 지난 4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내 직장은 대졸을 넘어 석ㆍ박사가 많은 곳인데 늘 '고졸'자로 입력되는 나는 백조사이 오리같은 존재로 느껴지곤 했다.
명문대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도드라지지 않는 평범한 이로 묻어가고 싶어 큰 목표가 아닌 무사히 '학사 졸업장' 하나 받기를 최종 종착지로 두었다.
일하고, 병원 다니고, 자주 아파도 수업만이라도 듣자 하며 버텼다. 몸 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면 입원짐에 노트북을 챙겨 응급실 갔다가 입원해서 일하고 또 수업듣고, 퇴원하면 출퇴근 하면서 외래 다니고, 수업 듣고...
3학년 2학기 중반에는 급작스레 상태가 나빠졌다.
장이 심하게 꼬여 마약성 진통제조차 듣지 않던 극심한 복통에 배는 곧 터질 지경이었고 응급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전신 패혈증 직전으로 가기 직전이었던 상태로 컨디션이 나빠 장기에 물이 차고 열도 많이 나 회복도 상당히 더뎠다.
이번엔 죽는걸까?
차라리 그렇다면 편해지려나.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 멍한 머리로 하던 생각.
살아있다는 것도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 죽지 않았다.
내가 10대일 때부터 앞서 퇴임하신 교수님들에 이어 봐주고
계신 교수님들께서 이번에도 날 살려내 주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좋아질거라는 단언은 오늘 날 자리에 두 발로 온전히 서게 만든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나 자신의 노력도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포기하려는 순간이 올 때마다 조금 더 버텨내라고 받쳐주던 손길을 느낀다.
학사모를 쓴 엄마를 보며 늘 서로가 다름에 밉기도 하지만 안쓰럽고 짠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릴때부터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아픈 아이를 키웠을까.
미움, 미안함, 죄책감, 원망, 고마움 같은 감정이 교차로 들쭉날쭉 거린다.
앞으로도 고분고분하거나 살가운 딸은 못 될거다.
그래도 지금까지처럼 마지막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 자식으로서 내가 갚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자식들에게서 어쩌면 영원히 졸업하지 못할 부모 대신 온전한 내 두 발로 걸어가기. 생애 제대로 맞은 첫 졸업과 동시에 연습해 가야겠다.
이번 여정은 졸업, 했습니다.
다음 여정은 어떤 발걸음으로 이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