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9)

by 녕이담

'산 넘어 또 산이구나'


병원에서 보내던 시간 속에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


긴 입원 기간동안 몇 번의 퇴원 계획이 무산되고, 한번씩 아프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길 반복하면서 도대체 언제쯤 끝날까 했지만


막상 긴 입원을 끝내고 퇴원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끝이 아니었다.


산 하나를 오른 후 또 다른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음식 섭취가 현저히 부족하기에 영양 공급의 보충이 따로 필요했는데

마치 숨을 쉬기 어려운 이에게 산소호흡기를 처방해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당시에 흔히 하던 행위가 아니었고, 특히 성인병동의 환자가 아닌 소아병동 환자가,

그것도 본인이 직접 하는 행위는 이 역시 내가 1번 타자가 되었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이때 나의 질환은 여러 이유로 희귀난치질환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었던터라

여러 방면으로 지원을 알아봐야했고, 아무 경제적인 능력이 없음에도

성인이 된 환자라는 이유로 적절한 지원 요건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집에 와도 거의 24시간 수액을 맞아야 했던 초졸의 20대.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집을 제2의 병원으로 구성해야 했다.

그에 도움이 안되는 나 자신의 무능력함.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한없이 무력함을 느끼게 했다.


한량처럼 놀고 먹고 인생을 버린 듯이 살아왔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생(生)을 이어나가기 위해 보냈던 긴 싸움의 시간이

어쩐지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 같이 보잘 것 없이 되어 버린 듯 해서.


그러했던 마음은 그나마 검정고시 시험을 보면서 점차 메꾸어 나가게 되었지만..

이전 글에서와 같이 그 과정은 참 험난한 과정이었다..


학업의 산을 넘어 다음의 산을 만나며..

고민은 다시 시작 되었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싶었기에

뒤늦게라도 대학진학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진로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대학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막상 빡빡할 일정을 평범한 학생들만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거듭 고려해보다 아쉬움과 미련 가득한 마음을 억지로 구겨 넣어버렸다.


그 다음 '하고 싶은 일' 또는 '할 수 있는 일'을 수없이 생각해봤지만,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 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여행'이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서

갑자기 여행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수액 때문에 집 밖의 장소에서 머무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말 그대로 어려움인거지,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서 말하는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깨부셔 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그에 대해 의료진과 상의를 드려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자 너무나도 흔쾌히 응원해주셔서 그렇게 차차 첫 여행을 준비했고 떠났다.


겨울의 부산으로!

흔한 소풍이나 수학여행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와 함께 여행을 가준 나의 멘토언니.


처음으로 타인과 떠나는 여행에서 우리는 해운대 바다에 갔고, 내 신발이 홀랑 젖어 신발을 사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생겼다.


소품샵에서는 바다와 빨간등대 그림이 여기저기 가득한 그림과 엽서들도 보고,

맛집에도 찾아가고, 쇼핑도 하면서 첫 여행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복귀했다.


여행의 시간 속에서 적어도, 그 순간들의 나는 '환자'가 아니었고 여러 사람들 틈에서

'녕이담' 자기 자신으로 그 사람들 중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진정한 삶을 사는 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평범한 이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에게는 간절히 필요했던 '성공'과 시작의 '용기'...

그 다음의 스텝에 발을 내딛을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고.

첫 여행을 시작으로 조금 더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여정에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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