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콘서트 : 더 위닝
수요일 어느 날 한창 재택근무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바로 카펫 위에 누워서 무심결에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아주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짧디 짧은 릴스들을 끝까지 보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다음 영상으로 타고 가며 내려갔다. 한국어로 된 영상도 끝까지 안 보는데 독일어로 뜨는 영상과 광고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뭔가 다른 촉이 왔다. 지금 막 눈에 들어온 이 독일어 광고를 읽어야 했다. 작년에 있었던 아이유 100번째 콘서트의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유럽에서도 상영한다는 거였다.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함부르크 이렇게 세 도시에서 개봉했고 상영관이 많지는 않았다. 함부르크의 경우 영화관 두 곳에서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 타임 이렇게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바로 토요일 오후로 예매를 끝내고 원래 그 시간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구구절절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영상을 담은 영화가 개봉했대. 근데 상영을 오래 안 해서 토요일 밖에 기회가 없어. 난 일단 예매를 했는데 혹시 관심 있으면 수영장 대신 같이 거기 갈래? 근데 노래는 다 한국어야.
결국 친구랑은 영화가 끝나고 만나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고, 나는 토요일이 될 때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도 전화해 자랑을 했다. 독일에서 아이유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고, 마침 내가 사는 도시에서 상영을 한다는 게 너무 기뻤다.
상영날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며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두 시 반,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갔다. 작은 상영관이었고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자막 하나 안 나오는 한국 노래를 두 시간 동안 듣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다들 아이유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고, 이미 다들 많이 찾아 듣고 가사 뜻도 다 찾아봐왔던 사람들이겠지만.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아이유가 짧게 짧게 말하는 부분에서만 자막이 나왔다. 노래에는 자막을 굳이 깔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멋지게 느껴졌다.
영화의 감상평은 이렇다, 충격과 충격과 충격과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콘서트를 영화로 본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애초에 콘서트에 가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예전에는 콘서트장에 풍선이나 야광봉을 휘둘렀다는 것도 응원봉 문화는 내가 한국에 살 때도 이미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응원봉 소지가 의무는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응원봉을 안 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에 더해 응원봉 중앙제어는 문화 충격이기까지 했다. 솔직히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다가 응원봉 중앙제어를 봤다면 그냥 한국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을 거다. 그게 뭐 대수인가. 그런데 비가 오면 전화가 잘 안 터진다거나 화장실에 들어가면 데이터가 느려지는 나라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콘서트장이 월드컵 경기장이다 보니 천장이 뚫려있었고 드론으로 천장에서 찍은 관중석의 모습을 종종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무대는 단순히 뒷배경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관중석까지로 되었고 그 전체적인 모습을 영화 상영관의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나도 어느새 마음속으로 응원봉을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예전에 아는 독일인이 나에게 독일 와서 살면서 문화적 차이를 어떤 부분에서 느끼는지 물어봤었다. 그때 좀 바보 같은 대답을 했는데, 문화차이를 많이 느낀다고 대답해 놓고서는 떠오르는 예시가 하나도 없어서 나중에 생각나면 알려주겠다고 얼버무렸다. 독일은 어떻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내 삶이 그 안에 익숙하게 자리 잡아버렸다. 연말에는 화약을 터트리고 은행 비번은 편지로 날아오며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나라. 설거지하고 낡은 스펀지는 모아다가 빨래해서 다시 쓰고 벼룩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 저녁 여덟 시가 넘으면 상점가는 어두워지고 주거지에서는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을 켜는 나라. 독일에서 직장을 다니며 살기 시작한 게 어느새 6년 차인데 아직은 오래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 영화를 본 이후로 깨달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문화 충격을 독일을 보며 느끼는 게 아니라, 독일에서 한국을 보며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콘서트를 영화로 봐서 아쉬웠던 점은 노래를 들으며 흥은 차오르는데 그저 차분히 앉아있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아이유가 너의 의미를 같이 부르자고 했다. 너의 의미 정말 좋아한다. 가사도 다 외우고 있다. 나도 같이 부르고 싶다. 하지만 내 옆자리 독일인들은 굉장히 정적이었고 괜히 옆에서 흥얼거려서 관람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입만 뻥긋거렸고 그 탓에 숨을 몰아서 쉬느라 가슴만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노래가 끝나면 물개박수가 치고 싶었다. 사실 영화관에 들어오면서 한국인이 거의 없어서 아쉬웠던 참이었다. 내 옆에 흥 많은 한국인이 앉아 있었더라면. 노래 '너랑 나'가 나올 때, 그 전주소리에 같이 기뻐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 봤다. 이 노래가 나오던 시기를 떠올리고 있을 누군가가, 어떤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었으면 했다.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콘서트에 가나보다 했다. 마침 노래를 끝낸 아이유가 이 노래의 반주를 들을 때마다 오는 울림이 있다며,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