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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Jan 08. 2022

후추가 맵냐

언어가 미숙해야 이어지는 관계

후추가 맵냐

걔는 내가 처음 사귀어 본 독일인이었다. 교환학생으로 간 대학교에서 학교 행사가 열렸고 거기에 갔다가 만났다. 독일에서는 집 데이트를 많이 하니까 걔가 항상 요리를 해 주겠다면서 집으로 불렀다. 무언가를 프라이팬에 구웠다. 그러고는 "경아, 너는 매운 걸 좋아하지."라며 다정하게 말했다. 스윗하다고 생각했다. 걔가 후추를 뿌리기 전까진.


독일에서는 간 후추보다는 통후추를 더 많이 먹는다. 마트에 가면 투명한 통 안에 동글동글한 통후추가 들어있다. 위쪽에 붙어있는 뚜껑을 열어서 입구를 돌리면 후추가 갈려 나온다. 걔는 후추 입구 부분을 잡고 계속 갈았고 나는 후추와 매운맛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질문을 하려고 머릿속에 문장을 다 만들기도 전에 요리가 완성이 되었고 지금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음식을 식탁에 날랐다. 걔는 후추 범벅이 된 음식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었다.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후추만 보면 걔가 생각난다. 후추가 맵냐. 으휴.



독일어가 늘었어, 너와 헤어지고 나서 (f. 에일리)

걔랑 몇 달 못 가 헤어진건 후추를 못 먹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독일에 최대한 오래 머물다가 한국으로 귀국했고 걔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미쳐버렸는지 나에게 나체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걔의 논리는 '사진 몇 장 보내주면 내가 덜 고통스러울 텐데 왜 안 해줘? 나 못 믿어?'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걸쳐있는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혐오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두고 싶지 않은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긴 설득의 끝은 그래서 왜 자기를 못 믿는지에 대한 추궁이었다.


교환학생 때, 그러니까 걔가 아직은 현직 연인이었을 때, 걔는 항상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원어민과 대화를 하려면 항상 집중력을 초고도 상태로 올려놓아야 하는데 걔와 대화할 때는 편했고 너무 즐거웠다. 걔도 즐거워 보였다. 늘 독일에 대해 이것저것 내가 신기해할 만한 것들을 생각해냈고 하나하나 알려줬다. 독일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걸 스스로 자각했던 것도 이 시기 즈음이었다. 걔는 이전처럼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게 더 이상 신기하지도 멋지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걔가 말하는 방식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도 어딘가 이상했다.


예를 들면, 유대인을 기리는 장소를 지나가다 기념일도 아닌데 생화가 놓여 있는 걸 봤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그 애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걔는 오히려 언제까지 독일이 이렇게 굽히고 살아야 되냐고 분개해했다. 영국인들은 자기네도 잘못을 많이 했으면서 아직도 독일인들한테만 뭐라고 한다고 말 하면서, 갑자기 앵글랜더(Engländer : 독일어로 영국인)들이 얼마나 몰상식한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예시가 과하게 극단적인 것 같아서 혹시라도 너나 주변 사람들이 직접 겪은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유튜브에서 봤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보았단다. 으휴 진짜.



후추냐 앵글렌더냐

현지인과 이야기를 할 때는 100퍼센트 이해를 못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때가 있다. 후추처럼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해가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 몇 년째 살고 나니 이제는 후추가 맵다. 그래서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 맥락이 있는 건지 아니면 상대의 논리가 이상한 건지.


걔의 말처럼 유럽에는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는 생각 안 하고 독일만 저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말하는 독일인들을 알 뿐 나도 직접 겪은 건 아니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을 한 국가로 일반화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 돌이켜보면 그 애와의 대화가 대부분 그런 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독일어를 더 잘 이해하게 된 이후로 걔와는 이미 삐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 당시에는 정확히 걔의 뭐가 이상한 건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었다. 언어적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래서 항상, 이 모든 것이 후추일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맥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걔가 결국 '나 못 믿어'의 논리로 나체사진을 요구했을 때에야 정신이 번쩍 들어 헤어졌던 거다.



언어가 미숙해야 이어지는 관계

걔 이후로 걔와 비슷한 느낌을 지닌 사람들이 간혹 가다 눈에 띈다.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떤 성별을 가졌든, 자기보다 언어가 미숙한 사람을 곁에 두려는 사람들. 언어적 우위를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 한 번 데었다고 느낌이 오긴 오는데 역시 또 긴가민가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굳이 과하게 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덤덤히 다시 물어본다. 자신을 치켜세워 줄 존재로만 나를 여기던 사람들이 내 반응에 실망하도록. 먼저 떨어져 나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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